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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월호 | 특집 ]

예술 감성으로 색을 입다 :그 발전 가능성과 선결 과제
  • 편집부
  • 등록 2010-04-07 16: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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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감성으로 색을 입다 : 그 발전 가능성과 선결 과제
| 최지만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교수

도예에 있어서 유약은 인간 생활에서의 의복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생활에서 입는 의복처럼 대부분의 도예가는 작품의 표면에 유약으로 장식해 마무리한다. 현대의 인간은 본인의 의상을 자신이 만나려는 사람이나 참석하려는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그 종류를 달리한다. 공식적인 회의나 파티와 같이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는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평소에 잘 입지 않는 복장을 꺼내 입기도 한다. 자신의 집 등의 일상생활에선 최대한 편한 의복을 입는 것이 보통이다. 수영장에 들어갈 때에는 수영복을 착용하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입장하는 사람은 없다. 신체가 균형잡혀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옷을 입어도 옷의 맵시가 잘 난다. 또한 자신의 신체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체형을 잘 드러내는 옷으로 몸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현대 도예 작품을 제작하여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은 마치 격식을 차린 파티의 호스트로써 손님들을 맞는 것과 유사하다.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일단 누군가를 초대하여 서로 간에 소통을 유도하는 장場을 연다는 점에서 파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예의 역사에 있어서 유약의 발견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신석기시대 무유無釉 토기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최소한의 의복과도 흡사했으며 그 용도에 있어서 건조한 곡식의 저장과 국물이 없는 음식을 위한 식기食器 등의 제한적 역할 만을 담당했었다. 원시 유약의 발명과 새로운 유약의 개발은 동서양 무역의 기폭제로 작용했으며 그 파급효과는 역사상 다른 어떠한 교역품交易品이 해왔던 역할보다도 큰 문화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유약의 개발이 우연적 발견이던지 집요한 연구의 결과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실용적 활용가치의 필요성에서 출발한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청자의 발명은 인접한 극동지역 뿐만이 아닌 서양에까지도 동양 문명의 신비에 대하여 선망하게 만들었으며 백자와 청화기법의 발명은 유럽사회에 이것을 모방하게 하여 통치자와 자산가들을 만족시키는 부富와 문화 수준 과시의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단지 유약의 방수성 등 실용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생겨난 현상이 아니며 실용적 측면을 넘어 유약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 현대도예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그 쟁점의 중심에 현대미술과 현대도예를 어느 정도로 한정 혹은 확대 해석하느냐는 핵심적 요소가 존재한다. 편의상 본 글에서는 가장 관대하게 적용하여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을 현대미술, 추상표현주의 도예 이후의 조형도자작품을 현대도예라고 한정하기로 하겠다. 미술 역사상 많은 작가들이 도예의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 표현을 해오고 있다. 알려진 대로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 등이 일찍이 도예를 자신의 작품 표현의 일부로 사용하였고 제프 쿤스 등 다수의 현시대 예술가들 또한 고부가가치이고 친환경적이며 고유의 특수성을 지닌 도예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예술표현의 하나로 사용할지에 대하여 고민하고 또한 시도해 왔다. 필자가 본지에 게제했던 <도자오브제 이해와 접근>1)의 결론에서 언급한대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술계의 장르 붕괴 현상 이후 많은 작가들이 장르의 벽을 허물고 타 장르 재료의 장점을 찾아서 뻗어나가고 있는 점을 주시해야만 할 것이다. 당시의 글에서 필자는 그들은 도예적 표현을 자신의 소통 언어의 한 종류로써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의 과감한 표현과 아이디어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였으나 부족한 장인적 기술과 전문 지식을 막대한 자본으로 대신하였고 이를 통해 작가 자신의 흙과 유약, 번조에 관한 약점들을 적절히 보완하였다.
현대의 도예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도예에 대한 지식과 경험, 감수성 그리고 유약 표면에 나타나는 미묘한 표면질감의 변화와 색감을 타장르 미술가들과 차별화될 될 강점으로 갖고 있다. 타장르 미술가들이 도예를 자신의 재료로 사용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상품화된 유약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여 도예가들은 그들 스스로 유약을 개발 할 수 있고 미묘한 번조 온도나 번조 환경을 조정 할 수 있으므로 자신이 계획한 결과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장르 작가들이 유약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로 커머셜 유약commercial glaze을 사용함으로써 누구에게나 표준사이즈의 획일화되어있는 상품화된 옷을 입는 것과 유사하다면 도예가들은 그들 작품에 가장 적합한 유약을 사용함으로써 세상에 하나뿐인 고급화된 디자이너의 옷이나 자신 스스로 정성스럽게 제작한 옷을 입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타 장르의 대가들이 도예가를 그들의 작업 보조자로 채택하여 그들이 원하는 최상의 조건의 유약을 공급받을 수는 있겠으나 도예의 역사를 숙지하고 있는 도예가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어진 미묘한 빛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는 도예가와 비교해서는 경험적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한국의 유약 및 도자 표면 장식의 특징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의 도자사를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중국, 일본이 백자의 시대를 지나 다채자기多彩瓷器로 그 발전을 거듭해 나아갈 때 조선은 청화, 철화 백자에서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는 물론 유교사회의 영향인 담백한 미美 표현의 예술관藝術觀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되기도 하지만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결과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에 어쩌면 실생활 용기用器로 사용하지도 않는 장식품의 표현 기법을 연구, 개발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의 도자는 최근까지도 중국, 일본 그리고 이들 국가로부터 영향받은 서양에서 사용하는 다채의 활용을 함께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조형도자는 그 역사가 오래되지 못한다. 한국의 도예가 본격적으로 순수조형 지향을 추구했던 시점을 1980년대라고 잡았을 때에도 그 역사는 30년을 넘지 못한다. 그동안 도예계 내부에서 현대 미술과 그 발걸음을 같이 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물론 유구한 도자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은 그 전통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거듭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에 비해 유약의 발전이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실용적 그릇이나 장식용 내외장 타일부분의 유약 발전이 한국 전통 도예의 배경 아래 어느 정도 이루어진 점은 사실이나 도자 조형 부분에 적합한 유약의 개발에는 그 속도가 뒤쳐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색상의 구현이라는 욕구 충족에 적극적이지 않은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한국 도자 조형을 위한 유약 개발의 상황과 도자 선진국과의 비교에서 나타나는 선결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색상의 구현에 대한 전통 및 연구 부족이다. 도예가도 시각예술가의 일원이기에 다양한 색상 표현에 대한 욕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책이나 잡지, 인터넷 등 시각매체를 통해 접해오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 싶어 하는 색상은 너무도 다양하다. 그러나 화방에서 물감을 고르듯이 손쉽게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사회적 기반이 빈약하다. 선배들의 작품에서 보여준 양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유약 종류로는 도예가들의 감수성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다채자기에서 주로 사용하는 상회 혹은 차이나 페인트china paint가 몇몇 외국 유학파에 의해 소개되고 사용되어 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5년 이내의 아주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은 한국현대도예의 재료에 대한 심각성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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