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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월호 | 특집 ]

국내 지역별 도예계의 현재 Ⅱ- 제주의 고유한 도자문화와 관광자원
  • 편집부
  • 등록 2009-07-14 16: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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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민자 제주대학교 공과대학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21세기를‘문화의 세기’혹은‘문화 전쟁의 세기’라는 말들을 한다. 관광 또한 문화적 배경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 훌륭한 조상들 덕에 별 어려움 없이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세계적 관광지가 얼마나 많은가. 다행히 제주는 세계 자연 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화산섬으로써 독특한 형태의 현무암들과 주상절리, 300여개가 넘는 오름들과 용암동굴들이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러나 제주가 안고 있는 관광의 걸림돌은 문화적 배경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실상, 제주는 육지와는 다른 섬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잘 보전하고 개발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 관·민의 무지로 인하여 문화유산들이 폐기돼 버렸거나 유실되었고, 고증도 거치지 않은 채 복원사업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 가치를 잃게 된 경우가 허다하여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주관광의 미래를 바라본다면 제주 고유의 문화를 기조로 하여 그 정체성과 향토성을 잃지 않고 지역적 특징을 계승시켜 나가면서 이를 문화상품화 하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07년을 ‘제주 민속 문화의 해’로 선포하고 그 기획전으로 서울과 제주에서 <허벅과 제주 질그릇>전을 가짐으로써 제주옹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점은 제주 도예계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앞으로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도자 문화와 전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각종 축제와 전시를 통해 제주 관광과 연계하는 인프라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의 대책과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제주 도자의 역사적 변천
제주도는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섬으로서 지면의 대부분이 현무암 질이어서 화강암을 모암으로 하는 백토는 생산되지 않으나 충분한 적점토가 매장되어 있어 매우 이른 시기부터 토기가 제작되었다. 제주도에서 최초로 출현하는 토기에는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원시 무문 토기와 융기문 토기가 있다. 원시 무문 토기는 풀과 같은 유기물을 점토와 혼합 성형하고 번조하여 그 유기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 유례가 없으며, 융기문 토기는 입이 크고 평저의 발형으로 구연 부위에 세줄의 점토띠를 파도형으로 곡선화시켜 부착시킨 것으로써 부산 동삼동의 융기문 토기와 같은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일관된 토기 제작의 변천상을 보여주며 제주 특유의 태토 및 보강재, 문양과 형태상의 특징을 갖게 되는데 이미 5세기인 탐라국 중기에는 해상왕국으로서 인구의 증가로 인한 제품의 수요가 많아 토기의 제작이 매우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토기의 제작 기술 및 수요의 증대로 번조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옹기의 제작으로 연결되어졌을 것으로 추산되나 이에 관한 특별한 기록은 없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야 『제주 풍토록』이나 『풍토기』에 허벅 진 여인네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남관박물지산편』에서 제주의 산물로 도기를 들고 있다.
제주의 각 절터나 관아지, 분묘 등에서 출토되는 청자, 백자, 분청 등은 해상을 통한 교역에서 유입된 것들이며, 난파되었던 남송 시대의 유물선이 제주 신창리 앞바다에서 발견되어 만여 점의 청자 유물을 건져 올리기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ㅁ밀 사발’이라 불리는 막사발이 제주의 민가와 관청 등에서 두루 사용되었는데, 그릇 두께가 두터워 무거운 듯 하면서도 표면에 작은 빙렬이 있는 은은한 회색조를 띄고 있어 자연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제주는 신석기 시대 이래로 많은 토기와 옹기가 만들어져 왔고, 고려와 조선 시대 까지도 해상을 통한 도자의 유입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지나 근대에 이르러 해상 교역이 부산, 목포, 인천 등지로 바뀌면서 점차 중앙의 문화로부터 소외되어 갔다. 더구나 옹기의 생산이 그치고 도굴꾼들에 의해 분묘 출토가 성행하여 양질의 도자류는 육지의 골동상들을 통해 거의 반출되어, 현대도예가 활성화되기 까지는 도자의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예계의 현황과 문제점
제주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서울 등지에서 교육을 받은 도예가들에 의해 현대도예가 태동 되었고 개인적인 작품 활동들을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제주옹기의 재발견’이라는 기치 아래 제주의 도예가들이 모여‘제주옹기문화협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다.
제주의 점토는 산화철의 함량이 8~10%나 되고 소량의 나트륨을 함유하고 있어 1150℃~1200℃의 온도로 번조하면 태토 자체가 자화되어 시유를 하지 않아도 물이 새지 않을 뿐 아니라 붉은 색상이 매우 아름답게 발색되어 타 지역의 도기와는 태깔이 틀리다.
더구나 제주의 전통 옹기는 그 제작 방법이나 시문, 번조 방법 등이 육지와 다르고, 가마가 현무암으로 축조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가마 축조는 아직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하겠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제주옹기의 장점에 대해 아무리 관을 설득하여도 인위적인 개발에 의해 급속히 훼손되고 있는 가마들을 보존할 수 있는 대책들을 세워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에‘제주옹기문화협회’에서는 세미나와 매스컴을 통해  제주옹기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전 회원이 매년 제주점토로 작업을 하여 전시함으로써 ‘옹기의 현대화’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고, 전통 옹기의 재현에도 박차를 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재는 제주전통도예원과 옹기마을에서 제주의 전통옹기를 제작하고 있고 제주점토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작가들도 많이 생겨나 제주옹기 주전자전이나 테이블웨어전도 열려 옹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도예 교육을 받은 제2세대들이 급성장하면서 도예계가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며, 2002년에‘제주도예가회’가 창립되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균형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도예 전문 갤러리도 생겨나서 일출랜드에 도예공방과 갤러리를 갖춘 아트센터가 문을 열었고, 도예전문갤러리‘유현재’및 전통 음식과 도자 그릇을 코디하여 전시함으로서 일반 대중들의 도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세심재’가 잘 운영되고 있으며, 폐교를 문화공간화한 ‘산경도예’, 도예체험을 겸한 펜션 ‘도유’, 세라워크 제주점‘피오레’도 성업 중에 있다. 또한 여미지의‘지옹원’이나 돌문화공원‘아트샵’등에서 제주토로 만든 관광상품도 만나볼 수 있다. 현재 제주에는 20여개의 공방과 50여명의 도예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영송학교, 영지학교, 혜정원과 같은 특수학교와 사회 복지 시설, 중·고등학교 및 초등학교에도 가마가 설치되어 있어 전문적인 도예 교육 외에도 평생교육원, 사회교육원, 어린이 특활교실 등에서 취미 도예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제주 도예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주의 여인들은 밭과 바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여야 했고, 물까지 길어 나르는 끊임없는 노동을 감수해야 했으므로, 격식을 갖춘 상차림을 하거나 차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상황은 지나간 옛 이야기인 것 같으나 근면 정신으로 무장된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사치품목에 해당하며, 이는 제주인들이 도자기를 즐겨 사용하는 문화적 배경이 미약한 원인이 된다. 즉 제주의 도예계는 소비의 취약성을 극복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은 이러한 사고로부터 무관하고, 차츰 경제적 수준이 높아감에 따라 도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인구가 증대는 하고 있으나 기존의 충분한 소비층을 갖고 있는 타 지역 보다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제주는 관광이라는 특수성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거시적인 마스터플랜과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일부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그치고 있으며, 우리의 고유한 도자 문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체험하며, 구입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즉 제작과 마케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작가들은 열심히 작업을 하나 판매 창구가 여의치 못하고, 도자 문화나 역사 체험에 관심이 있는 도민이나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정규적인 프로그램이나 대중 교통편이 없다.
문화, 역사적 체험과 더불어 관광화 할 수 있는 제주도의 고유한 옹기 문화는 있는데 이를 관광에 적절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옹기 박물관이나 옹기 자료관이 없어 유물이나 자료 보전에 시기를 놓치고 있음은  제주도로써나 도내 작가들에게 있어 매우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며, 후대에 면목이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관광과 연계한 도자의 활성화 방향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관광에 있어 바이블과 같다. 일본은 특히 도예문화 활성화에 있어 이를 잘 실천하는 나라이다.‘아리따’, ‘비젠’, ‘세또’, ‘단바’, ‘미노’, ‘가라스’ 등 일본은 그 지역의 점토와 풍토적 특성을 고려한 도자 문화를 만들어 내고, 이를 잘 계승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주와 이천, 강진, 문경, 울진, 김해는 그런대로 지역성을 마케팅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보겠다.
제주에도 고유한 옹기 문화가 있고, 타 지역과 다른 독특한 성분의 점토를 가지고 있어, 이를 잘 이용하여 특성화시켜 나간다면 지역적인 관광 문화상품으로써 손색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나가려면, 첫째, 작가들이 부단한 노력으로 관광객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제주만의 특색 있는 관관상품을 만들어야 하겠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화에도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제주특별자치도가 적극적인 후원과 투자로 작가들의 디자인 개발과 연구를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자 전문 박물관과 연구소, 또는 자료관을 설립하여 유물의 보존과 전승에 힘쓸 뿐 아니라 연구, 개발의 원형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도예인들이 함께 모여 작업할 수 있는 도예촌을 건립하여 이들을 하나로 묶어 관광 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다면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제주의 문화관광에 있어 큰 몫을 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제주 도예계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셋째, 제주의 전통적인 옹기 가마의 보전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제주의 전통 옹기 가마는 현무암을 요재로 하여 만들어진 용굴로서 노천에 축조되어 있으며, 산화염 번조로 기물을 구웠던 가마를‘노랑굴’, 환원염 번조로 먹구이를 하였던 가마를‘검은굴’이라 칭하는데, 거의 유실되었거나 훼손되었다. 현재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는 노랑굴은 5기, 검은굴은 1기에 불과하며 이중 보호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한 곳에 불과하고, 다른 가마들은 안내판만 세워져 있는 상태이다. 특히 1기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검은굴의 원형을 잃지 않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며, 이러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가마들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을 중심으로 옹기문화를 보존하고 문화 상품화 할 터전을 빨리 마련해 역사, 문화 체험 관광으로 연계하여야 할 것이다.
상기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미약한 도예인들의 역량과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도민들의 인식 부족, 관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의 투자 및 성원의 부족으로 여기고 좀 더 많은 홍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들의 부단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과 투자, 그리고 이를 상품화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맞아 떨어질 때라야 제주의 고유한 도자 문화가 훌륭한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 하게 될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9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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