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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월호 | 특집 ]

핸드페인팅 도자예술의 세계
  • 편집부
  • 등록 2009-07-11 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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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페인팅 분야는 작업이 쉽고 편리하며 작업공간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대학도예 전공자 출신 공방운영자와 취미도예가로부터 도자공방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산업자기의 실용성과 높은 예술적 가치를 담은 공예적인 요소가 만난다는 점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도예인과 여성이 대부분인 취미도예인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같은 시점에서 핸드페인팅 도자예술이 올바른 인식 속에서 정착하고 긍정적으로 활성화돼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이번 호에서는 핸드페인팅 도자의 역사를 소개하고 현재 핸드페인팅 도자공방 운영에 대한 제언과 국내 핸드페인팅 도자분야 활황에 대한 진단을 듣고자 한다. 또한 현재 전국에서 활발하게 운영 되고 있는 핸드페인팅 공방 10곳을 선정해 각 공방별 특징을 소개한다.

 

핸드페인팅 도자의 역사
유럽 핸드페인팅의 세계
글 문은아 인덕대학 공간장식도자디자인과 교수

수천 년의 역사동안, 정신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를 반영해왔던 도자기의 표현 장식은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왔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최고급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유럽 문화권의 도자기 장식은 동양과 비교하면 매우 화려하다.
유럽도자는 역사적으로 중국 자기보다 수 세기나 뒤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기물 표면에 직접 그리는
핸드페인팅의 장식기법이 발달하여 다채로운 색상으로 유럽인들의 취향에 적극적인 부응을 할 수 있었다.
본 내용에서는 화려한 유럽 도자기 장식의 발달 원동력인 핸드페인팅의 역사적 경로를 토대로 그 발달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 핸드페인팅의 발달 배경
유럽 도자기의 역사는 이집트나 그리스의 도자기를 기원으로 하여 고대 지중해 지방에서부터 서양의 채색도예가 시작되었다. 이후 유럽에서 핸드페인팅이 본격적으로 발달될 수 있었던 촉매제 역할은 유럽 도기의 채색화에 영향을 미친 중동의 러스터채와 주석 유약이며, 또한 유럽자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중국과 일본 자기이다. 

유럽 채색화 도기 - 중동의 주석과 러스터Lustre 영향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던 이슬람 세계의 도기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질이  뛰어났으며, 유럽도기의 발전에 중국다음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9세기에 중동에서는 백색의 주석 유약과 광택이 나는 러스터 유약을 개발하였는데, 이러한 성과는 비잔틴을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주석 유약의 아름다운 러스터채Lustre ware나 채색화 도기 기법은 이후 이스파노-모레스크 도기hispanomoresque, 마욜리카Majolica, 파이앙스Faience, 델프트Delft등 각국에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근세도기에 영향을 끼쳐 채색화 도기 문화의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었다.
유럽 핸드페인팅 자기Porcelin - 중국과 일본자기 영향
중국 자기의 채색 특징
중국자기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약 7-8세기경으로 이후 1천여 년 동안 중국의 도자기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매체역할로써 세계 도자기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9세기 이전부터 중, 근동 지방과 동남아시아 지방으로 자기를 수출하였고 이러한 중국의 수출품들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 많은 물량이 중국에서 직접 유럽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시대별 중국 자기의 채색 방법을 살펴보면, 먼저 초기의 중국 자기는 주로 단색의 코발트 블루를 사용하였으며 유약 시유 전 기물 표면에 그림을 그렸다. 다공의 초벌구이 표면 위에서는 수분을 쉽게 빨아들여 섬세한 붓놀림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림의 무늬가 간결할 수밖에 없었다.
명조 14세기 이후에 이르러서는 유약을 시유한 상태에서 재벌한 후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저온에서 다시 한 번 더 구워내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중국 자기 예술 발전에 큰 획이 되었다. 이것은 유상채화釉上彩畵:Over glaze의 일종으로 매끄러운 유약 표면 위에 핸드페인팅을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붓놀림이 자유롭고 낮은 온도에서의 번조로 빨강, 노랑, 초록 등의 화려한 색상의 표현이 가능했다. 이후 점차 코발트블루를 테두리 장식으로 사용하고 안쪽은 다른색으로 채색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일본 아리타 자기의 채색 특징 
16세기까지 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던 일본은 17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에 의해 대량으로 수출된 아리타 자기에 의해 유럽 도자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항구 이름이었던 이마리는 아리타 도자기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면서 유럽인들 사이에서 일본 자기는 이마리로 통하게 되었다. 이마리 자기의 핸드페인팅 방법은 먼저 파란색을 칠하고 유약을 시유하고 구운 다음 철사 혹은 진사라고 하는 에나멜 색을  덧칠한 후 온도를 낮춰 한 번 더 구워내는 것이었으며, 장식그림은 대개 꽃과 동물을 주제로 하였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일본 양식에는 가키에몬이 있다. 이 양식의 특징은 우윳빛 기물에 거의 색깔 없는 유약과 갈색 도금의 테두리가  특징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토양이 되었던 일본 도자기는 아직까지도 유럽의 유명 도자기 공장들이 이마리 패턴, 혹은 가키에몬 시리즈 등을 최고급 품목으로 제조하고 있다. 

유럽 백색 석유錫釉 도기시대의 핸드페인팅
오랜 전부터 도기를 사용해 왔던 유럽인들은 백자에 매료되어 이를 개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백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백색 석유錫釉백색 불투명유 도기가 등장하였다. 백색 석유의 등장은 선명한 색상의 표현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유럽의 회화적인 도기예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13~15세기: 스페인의 러스터채와 채색화 도기
13-15세기의 스페인에서는 근세도기인 ‘이스파노-모레스크’라는 석유錫釉백색 불투명유도기가 만들어졌다. 중세후기부터 근세초기에 걸쳐 발렌시아 지방의 파테르나Paterna와 그 근교의 마니세스Manises가 석유도기 생산의 일대 중심지였다. 이들 지역에서 구워지고 있던 도기의 표면 장식을 살펴 보면, 파테르나에서는 12세기경에 반투명에 가까운 하얀 유약에 망간의 갈색과 동의 녹색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13세기경에는 코발트 청색이 도입되어 화장한 바탕에 그려졌다. 또한 이스파노-모레스크 도기 중에서 주목 되는 마니세스의 금속적 광채를 지닌 러스터채 기법은 초벌구이 한 도기 전면에 납과 주석을 합성한 유약을 발라 번조하고, 그 위에 유화동硫化銅이나 유화은硫化銀, 금을 분말로 하여 황토와 섞은 슬립으로 그림을 그려 넣고 약 900°의 낮은 온도에서 환원염으로 번조하였다. 마니세스 도요지는 14세기 중반기부터 급속히 개화되었으며, 15세기에는 스페인 최대의 도요지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초기부터 러스터와 코발트 청의 그림을 복합적으로 넣어 소성하였다. 이와 같은 마니세스의 러스터채와 파테르나의 채색화도기는 르네상스가 개화되는 14세기말부터 15세기 초에 걸쳐 이탈리아에 다량으로 수출되었다.

15세기 후반-17세기: 이탈리아 마욜리카 도기
이탈리아 석유도기의 총칭인 마욜리카는 스페인의 마요르카majorca섬에서 유래하였는데, 15세기 마요르카섬을 경유해 대량의 이스파노, 모레스크 도기가 이탈리아로 수입되어 유행하면서 15세기 후반에 ‘마욜리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15세기 후반 에서 17세기에 걸쳐 마욜리카 예술은 파엔자 지역을 중심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의 마욜리카는 실용성을 벗어나 귀족적이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로  회화적 장식 지향이 뚜렷해지면서 설화화說話畵라고 불리우는 장식 모티프가 특징이다. 이것은 접시 안쪽 중앙이나 접시면 전체에 여러 가지 이야기 주제(신화적, 종교적. 문학적 등) 장면을 회화적 공간 효과를 잘 살려 표현한 것이다.

마욜리카 제작 기법은 고온에서 견디지 못하는 도기질의 소지로 인하여 중화도 기법을 사용하였다. 16세기 C. 픽코파소의 저서 도예삼서에서 서술된 내용에 의하면, 먼저 자연 건조된 기물을 1050°-1150°에서 1차 번조를 하고 기물면에 비안코bianco라 불리우는 윤이 나는 흰색의 용액-주석, 납, 규사, 술병에 고인 주석의 혼합물-을 바르고, 비안코가 덜 마른 상태에서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핸드페인팅 작업이 끝난 후 900-1000°에서 2차 번조를 하면 마욜리카 도기가 완성된다.
주요색상은 청색을 비롯하여 오렌지, 밝은 황색, 황녹색, 적색 등 다양한 컬러가 조화를 이뤘으며, 16세기에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러스터채색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 17세기경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마욜리카도 독일의 마이센에서 중국식 백색자기를 생산하면서 쇠퇴하였다.
 
16-18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 도기 
16세기에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마욜리카 도기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는 중국의 자기와 유사한 도기로 분류되어 17-18세기 유럽의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백색 불투명 석유를 바른 이탈리아 마욜리카 기법을 사용하였으나 마욜리카와는 달리 성형 후 백색을 칠하고 초벌구이한 후, 그 위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투명유를 시유하여 고온에서 굽는 과정을 거쳤다. 고온에서도 색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강도가 높아 두께를 얇게 조절할 수 있었다.
델프트는 중국의 청화백자와 일본의 이마리 자기를 모방하면서 마욜리카보다 발전된 도기로 인식되었으며, 동양풍의 그림 문양은 주로 코발트 산화물을 주성분으로 한 짙은 청색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망간산화물을 섞여 만든 자주빛의 색을 이용한 그림들도 많았다.

17-18세기: 프랑스의 파이앙스Faience
파이앙스라는 말은 이탈리아 파엔자에서 가져온 도기라는 뜻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와 비슷한 프랑스 백유 연질도기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도기에 주석을 함유한 파이앙스는 14세기 때 제작을 시작하여 18세기가 전성기였다. 파이앙스의 핸드 페인팅 방법은 재벌 한 뒤 동양풍이나 당시 유행했던 로코코풍의 도안을 채색하고 저화도 번조의 과정을 통하여 선명한 색상이 기물 표면에 고착될 수 있었다. 또한 파이앙스는 금사분金砂粉으로 붉은 색을 뽑아내어 분홍색, 주홍색과 자주색을 이용한 프랑스풍의 도안을 창출하여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연질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유럽 자기Porcelain의 핸드 페인팅
18세기에 들어와 유럽에서는 자기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중국이나 일본도자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들의 영향력 아래  마이센을 시작으로 한 유럽의 자기예술은 금색이나 화려한 색상을 통해 유럽인들의 취향에 크게 부응하게 되었다. 또한 황실의 지원과 관리 하에 일급재료와 고급기술의 활용이 밑거름이 되어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각 나라마다 독특한 스타일을 갖기 시작하면서 20세기 이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자기산업의 고급 브랜드를 완전히 주도하게 되었다.
 
18세기 마이센Meissen자기
유럽에서 중국 자기의 동경으로 시작하여 많은 실험을 걸쳐 이미 상당 수준의 연질 자기를 만들어냈지만 1708년에 처음으로 독일의 보트거J.F.Botter에 의해 비로소 순수 중국식 경질자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마이센은 17, 18세기 유럽을 풍미한 중국풍 취향과 17세기 후반 유럽으로 들어왔던 일본 도자기 영향하에 발전하였다.
마이센 자기의 채색방법은 주로 900˚에서 구워진 초벌구이의 기물위에 직접 채색을 한 후 유약을 입혀 1450˚의 고화도에서 구워서 완성시킨 하회기법을 이용하였다. 마이센 자기의 주 모티브는 바로크적인 양식이 적용되었으며, 그림의 이미지는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 자연과 사회의 현상을 비유적으로 자기에 표현해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중국식 자기제조 비법을 밝혀낸 독일의 마이센은 프랑스의 세브르와 함께 초기 유럽의 자기 산업을 이끌었으며 왕의 소속에서 1918년 국가의 전매청 소속으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국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세브르 자기
마이센의 자기와 더불어 근세 유럽의 자기예술을 대표하는 세브르 자기는 루이 15세의 연인인 마담 퐁파두르 부인에 의해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기 공장이 설립되었고 그녀의 강력한 후원으로 발전하였다.
18세기 후반에 로코코풍의 영향에 의해 발전된 세브르 도자 디자인의 특징은 금채gilt장식 테두리와 다채로운 채색기법으로 화려함의 진수를 발휘하였고 소용돌이 같은 문양과 휘어 감기는 덩굴나무의 형태를 즐겨 장식하여 보다 여성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을 강조 하였다.

19세기 영국 도자기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 기업형태의 자유시장 경쟁원리와 본차이나가 원동력이 된 영국도자기는 19세기 유럽 도자기를 주도해 나갔다. 이 시기 영국도자기는 프랑스식 금채gilt장식을 응용하기도 하였지만 신고전주의 사조의 자연을 모티브로하여 엄격하고 균형잡힌 느낌을 주는 영국식 특유의 디자인을 볼 수 있으며, 산업화에 힘입어 도자기의 제조공정의 단순화와 시스템화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핸드페인팅과 수공 작업의 마무리를 고수하여 우아하고 섬세한 도자기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영국도자기의 대명사라 불리우는 웨지우드Wedgwood는 전사기법을 최초로 개발하여 대량생산방식을 확립하였으며, 새로운 소지, 새로운 유약, 새로운 채식법彩飾法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개발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 도자기의 대표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로얄덜튼, 로열더비, 로얄알버트, 민튼 등은 절묘한 도금과 정교한 채식기법으로 우아한 격조의 차이나웨어의 명품으로 인정받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까지 받았으며 이후 ‘왕실royal’의 칭호를 붙일 수 있는 허가를 받기도 하였다.

핸드페인팅의 전통을 고수하는 현대 유럽 명품 도자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넘어가면서 도자기 생산의 산업화는 대량생산에 의한 양산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도자기 표면장식 또한 기계로 찍어내는 방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산업화의 경향과 더불어 이에 맞서 19세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는 수공 장인 정신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으며, 이러한 운동에 영향을 받아 현대적인 스튜디오(공방)도자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서 뛰어난 도자기 기술과 채색기법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유럽 명품 도자기들은 디자인과 제작과정에 유명화가들과 디자이너를 참여시켜 회화와 도자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였다.    
한편, 20세기 초에는 아르누보, 아르데코 양식이 성행해 핸드페인팅에도 그 영향을 받았는데 무어크로프트의 도자기를 예를 들 수 있다. 무어크로프트의 도자기는 산화철에 의한 발색과 수채화기법으로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독특한 핸드페인팅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각 나라와 브랜드 마다 각기 다른 핸드페인팅 방식으로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유럽의 명품 도자기로 인정을 받고 있는 마이센, 세브르, 로얄 델튼 그룹, 로얄 우스터, 로얄 코펜하겐, 헤렌드 등은 전 세계 고급 브랜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도자기 제작 과정에서 장인정신이 잘 드러나는 로얄 코펜하겐을 보면, 22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100% 수작업으로만 고집하는 핸드페인팅 방식으로 가장 숙달된 장식가에 의해 1197번의 붓질을 해야만 로얄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블루 훌루티드 청화백자를 완성할 수 있다. 덴마크의 문화재로까지 지정되어 있는 블루 훌루티드 문양은 오늘날 덴마크를 상징하는 청화백자이다.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유럽의 명품 도자기와 같은 고급디자인의 범주에서는 장인정신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계로 만든 제품에서도 수공의 모양새를 찾을 수 있듯이 차별화 된 핸드페인팅 기법도 디자인 전략이 된다. 이렇듯 반산업적 미학이 빛나는 유럽의 핸드페인팅 작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속의 장식에서 빛이 나고 있다. 
역사 속에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유럽 명품 도자는 이들 표면에 그려졌던 핸드페인팅이라는 기법으로 최근에 많은 일반인들에게 취미 공예로써 소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대중적 관심이 지속적으로 더해져서 공예도자 장르의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핸드페인팅 도자공방 운영에 대한 제언
글 전성희 쉬즈데코 대표


필자 본인은 6년전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어 다시 도자기를 공부하면서 세라믹 핸드페인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불과 한 3-4년 사이에 세라믹 핸드페인팅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가고 있음을 느꼈다. 보는 사람의 눈을 현혹 시킬 수 있을 만큼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들, 더구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홍보하면서 세라믹 핸드페인팅은 점점 더 퍼져 나갔고 관련 스튜디오를 창업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급속도의 활황 속에서 현재도 핸드페인팅 공방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런지 감히 짐작이 어렵다. 필자도 세라믹 핸드페인팅이 너무 좋아 수없이 밤을 새며 작업하고, 가마를 열 때 마다 오롯이 모여 있는 결과물을 볼 때마다 그 애틋함에 가슴이 벅찼다. 그런 작은 행복이 핸드페인팅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임에 틀림없다.

현재 세라믹 핸드페인팅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싶어 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감히 조금 앞서 시작한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조언하고자 한다.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다”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 혹은 외국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듣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그림을 잘 그린다. 하지만 취미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지금 시작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인지 과연 내가 누구를 가르칠 만큼의 실력이 되는지, 돈에 욕심없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인지 등은 필히 심사숙고 해야 할 사안이다. 세라믹 핸드페인팅을 가르치는 여러 곳을 충분히 비교하고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곳(그림의 화풍이나 운영방식, 창업 조건 등)을 선택하고 창업을 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이 일이 진정 본인의 적성에 잘 맞는지 충분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보기에 좋은 일이라서 단지 해보고 싶다는 의욕 하나만으로 적잖은 돈을 투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미이다.
핸드페인팅 공방을 운영하며 경험한 바 요즘 수강생은 참으로 똑똑하다. 따라서 운영자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운영 하고 있는 스튜디오와 분명히 다른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그게 곧 나의 경쟁력이 되고 공방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임을 명심하자. 다른 사람들이 쉽게 오픈해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큰 오해임이 틀림없다. 모두들 조금씩은 다르지만 각자의 어려운 점을 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즐겁게 하는 취미가 직업으로 정말 즐겁게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늘 창조적인 일에 게으르지 않고 도전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미 절반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스튜디오가 가진 많은 장단점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본인만의 차별화 전략과 단점을 보완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분한 자신을 가질만큼 탄탄한 실력도 쌓아야 한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보면 운영에만 급급해 실질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소홀하기 쉽고 그러는 동안 그안에 정착해 버리고 마는 일을 주변에서 종종 본다. 하지만 늘 변화를 고민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공부하고 채우려고 노력한다면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 그저 좋아서 일을 평생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아주 행복한 직업이 될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자신만의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클릭 한번이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넘쳐나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또한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너무 신뢰하여 뜻하지 않게 실패하는 일들도 보게 된다.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면 화려하게 포장된 말만 믿고 현혹되어 공방사업을 시작하지는 말자. 아무리 작은 경험이어도 본인이 직접 하지 않은 일은 간접경험이고 그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스스로의 몫인 경우가 많다. 너무 쉽게 유행처럼 번지고 흥하는 현상 속에 빠져있다가 이면의 세계에서 망하고 있는 자의 눈물은 못 보게 되는 경우를 쉽게 보게 된다.
필자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의 비율은 거의 90%이상이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크게 다르다. 세라믹 핸드페인팅을 하는 사람들 중 남자의 비율이 적어도 50%는 되는 듯 하다. 이처럼 외국 사람들이 세라믹 핸드페인팅을 취미는 취미로만 즐기고 작품을 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한국에서는 취미를 무조건 직업으로 연결해서 돈을 목적으로 창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냥 겉멋으로 여자들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은 그 일을 오랫동안 즐기면서 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또한 지속할 수 있는 생명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겉멋으로 작업하기에 도자기 작업은 그리 녹록치 않다. 창업을 시작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두 다 하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단정 짓거나 식기를 만드는 일에만 얽매이지 말고 조금 시각을 돌려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도 제작해 보자. 가구와 조명, 건축과도 충분히 접목시켜 더 발전시킬 수 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과 하지 말고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하기 바란다. 또한 식기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제 식기는 단순히 밥을 먹는 도구에서 벗어나 식공간의 주인이고 다양한 식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주축임을 명심하자.

그럼 이쯤에서 재료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세라믹 핸드페인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양한 색상의 안료와 같은 비율 만큼의 다양한 비스크(초벌 기물을 뜻함)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어느 브랜드의 어느 나라의 안료와 비스크가 최고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한국에서 만들어진 많은 안료와 비스크를 접해왔고 세계적으로 페인팅작업이 유명한 다른 나라의 안료와 비스크로 작업해 왔고 지금도 다방면으로 테스트 중이다. 그렇게 다양한 재료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각 업체 별로 다양한 색상과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료와 비스크를 선택 할 때는 목적에 맞는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라믹 페인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유와 가마 안에서 번조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지 않은가. 미세한 가마 안의 온도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따라서 산화번조를 하는 전기가마라고 하더라도 가마 안의 온도편차와 온도의 안정성을 충분히 확인하고 가마를 구입해야 한다.
모양이 똑같이 생긴 비스크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색상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그릇의 모양과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이 핸드페인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다. 우리가 현재 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안료와 비스크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지금의 작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페인팅 작업에 빠져 있다 보면 점점 더 욕심이 생기고 본인의 손으로 본인만이 원하는 비스크를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거 같다. 그래서 또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게 되고 흙에 빠지게 되고 그러나 보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했던가? 한국의 좁은 시장 안에서 서로 상처를 입히며 경쟁하기 보다는 조금 더 넓게 보고 길게 보자. 세계라는 넓은 시장이 우리에게 늘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와 그들만의 컬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그들과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을 수준 있는 작품과 한국의 색깔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 다 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앞서간 사람들의 장단점을 충분히 벤치마킹해서 나만의 독특한 세라믹 핸드페인팅 세계를 만들어 나가보길 기대한다.
현재 작업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세라믹 페인팅을 하는 많은 작가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그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 취미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 내 놓아도 부족하지 않음 만큼의 제품을 만들어 한국의 명품 브랜드로 키워 내는 것도 조금씩 욕심을 내어보면 어떨까?
6년 전의 필자처럼 현재 세라믹 핸드페인팅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많은 이들이 내일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선의의 경쟁자는 더 발전하기 위한 아주 좋은 파트너임을 명심하자. 한국의 세라믹 핸드페인팅 제품을 세계인의 식탁에, 그들의 공간에 하나쯤은 놓이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가마 문을 열어 본다.

 

국내 핸드페인팅도자 분야 활황에 대한 진단
글 장금일 세라워크 대표

현재 한국 도자기 시장에서 핸드페인팅도자분야의 활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재 핸드페인팅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소요가 급증하는 판매시장의 활황 보다는 취미도예를 중심으로 한 핸드페인팅 공방문화의 활황이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는 공급자(공방작가/도예전공자)의 욕구와 명분이 소비자(취미 수강생)의 특별한 공방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적인 기호가 맞아 떨어진 효과가 아닌가 생각 한다.
요즘 핸드페인팅 도자기 공방은 기존의 도예공방과는 여러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대중에게 관심을 이끌어내고 ‘활황’이라는 모습을 보이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에 따라 핸드페인팅도자의 몇 가지 특징적 요소를 정리해 본다.

첫째, 쉽다.
핸드페인팅도자기는 도자기라는 소재는 동일하지만 기존의 도자기와 달리 누구나 접하기 쉽다. 기존 공방의 경우 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교육이나 상품을 제공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 대부분이지만 핸드페인팅 도자의 경우는 이미 제작 되어진 형태에 표면을 장식하는 내용(그림 그리기)이어서 지도하거나 배우는 입장에서는 한결 쉽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둘째, 편리하다.
종이와 물감만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캔버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초벌제품과 도자기용 물감이 제공되고 번조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전기로가 보급된 것이다. 흙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정교한 물레기술이나 특별한 유약을 개발하여 표면을 장식하고 심오한 번조기술을 필요치 않고 라면 끓이듯 간단하고 편리하게 도자기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청결하다.
공방의 청결성이 왜 중요할까? 하지만 이는 기존의 도자공방과 확연히 다른 부분 중 하나이다. 흙을 소재로 작업을 하다 보면 우선 점토의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건 매우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섞여서는 안 될 여러 가지의 다른 점토를 관리하기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분의 점토를 처리하고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닐하우스 천막처럼 작업장이 지저분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핸드페인팅 도자공방의 경우는 점토를 다루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에 점토관리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고 늘 청결하고 카페 같은 아늑한 인테리어를 가능케 해 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작업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여성이 작업하거나 수강하는 공간에 서로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여성의 마음을 읽는 여러 가지 요소
요즘, 내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품위도 있고 거기다 전문적인 일처럼 보이는 폼나는 직업이 없나? 하고 찾는 이에겐 핸드페인팅 도자공방은 그 기호에 딱 떨어지는 아이템이다. 기존의 도자기 공방이 남성 중심의 노동이 요구되는 힘든 업태였다면 핸드페인팅 도자공방은 표준화된 여러 시스템과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물리적으로 힘이 절약돼 여성 혼자 힘으로도 꾸릴 수 있다. 기존의 공방과 달리 도심의 작은 공간 어디에도 쉽게 작업장을 열 수 있고 자신의 붓끝으로 전문성을 키우거나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을 가르치면서 강사의 품위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핸드페인팅 도자기를 여성의 평생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여성도예전공자가 도예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인생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산업자기의 실용성과 공예적인 요소의 만남
실용적인 형태의 산업자기는 대중의 선택을 손쉽고 유익하게 했다. 두껍고, 무겁고, 하지만 특별한 것이 기존공방 제품이었다면, 핸드페인팅 도자공방에서 쓰는 초벌제품은 대량 생산을 위해 심사숙고 끝에 만들어진 기능성이 뛰어난 제품이라는 것이다. 우리집 식탁 위에서 흔하게 쓰이는 그릇들인데 그것을 스스로 개성있게 만들 수 있다는 특별한 기회가 제공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집 그릇들을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핸드페인팅이라는 수공예적인 요소가 개성있는 소비자에게 특별함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도 작가가 될 수 있는
도자기의 틈새시장
그간 일반 도예작가들의 무관심으로 핸드페인팅도자기 분야는 구석진 작업장의 전통도자기 표면장식 기법쯤으로 치부되었지만 핸드페인팅도자 전문 공방의 출현은 일거에 이러한 인식을 바꾸었고 도자기분야에서 일반인도 ‘나도 작가가 될 수도 있구나’하는 욕구를 불러 도자기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현재 이 분야는 인디안 땅 따먹기처럼 누가 깃발을 꽂느냐 같은 미개척 도예시장이다. 어쩌면 룰도 없고 인증도 없이 대중의 관심과 수요만 커가는 현상인 것이다. 학교 도예전공과에서는 최근들어 뒤늦게 교육프로그램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는 추세이지만 강사 섭외가 쉽지 않다. 걸출한 핸드페인팅 작가 등장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따라서 지금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요소가 지금 국내 핸드페인팅도자분야 활황을 진단하는 몇 가지 이유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그 활황의 중심에 소비자와 공급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유익함을 추구한다. 소비자도 공급자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유익한 것. 이 유익함의 교집합에 참여가 있고 핸드페인팅도자 분야는 그 유익함을 제공하였다.
한편, 이러한 이유는 도자기시장 전반의 활황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요소 중 일부이지 필연적인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원나라 때 완성된 청화백자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상품으로 전 세계를 누볐다. 최고의 도자기 상품을 원하는 유럽인들은 400여 년 동안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파이앙스, 이태리의 마욜리카, 네델란드의 델프트, 터키의 이즈닉 도자기가 만들어졌고 그 기술에 대한 노력은 영국의 본차이나와 마침내 독일의 마이센자기를 만들어 전 세계 도자기 시장의 90%를 장악하는 명품 브랜드의 시장을 장악 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이러한 도자기술을 습득하고자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의 도공을 데려다가 아리따에서 이마리도자기를 탄생시켜 유럽에 엄청난 도자기를 수출, 향후 일본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의 근간자금을 만들었다. 어쩌면 현재 한국 도자기시장의 침체는 도자기를 최고의 상품으로 보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들이 없었고 하늘의 별을 따듯 막연한 도예작가주의 학교교육과 상품생산을 생계수단으로 치부하는 안일한 태도가 지금의 상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이 사회에 영향력를 나타내고 내부의 역동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자기제품을 사서 쓸 수 있는 소비자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소비자와 괴리된 공허한 시도는 중단하고 제값을 받는 단단한 상품으로 소비자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상품이 기본적으로 유통이 되는 탄탄한 도자기소비시장 위에서 취미시장도 단단한 미래를 여는 것이다.
작가적이든 혹은 공예적이든 디자인 역량을 구현해낼 작가층이 발전하고 그와 함께 할 생산 업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우리의 도자시장은 더욱 활기 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모델이 현재 핸드페인팅 도자공방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모습이 도자전반의 시장에도 확대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세라믹스 2008.6월호를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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