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and Future of Green Design
| 이순종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환경문제 해결에서 디자인의 중요성
21세기 들어 기후온난화와 오염 등 환경문제는 세계의 가장 심각한 이슈로 등장하였고, 이에 환경친화적 삶과 사회 환경을 이뤄내기 위하여 모든 학문분야가 노력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더 이상 어느 한 집단의 노력으로 국한되지 않는 전지구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조건이 되었다. 지금까지 친환경에 대한 이슈는 규제적인 측면이 강했었다면 이제는 보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기업의 이미지이거나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인간이 사용하는 제품, 서비스, 건물 등 모든 인위적인 창조물에서 야기될 수 있는 환경문제의 해결은 80%가 디자인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인위적인 사물의 창조를 이끌어 가는 공예가, 디자이너들은 창조과정에서 환경친화적 가치를 가장 중요한 창조의 요소로 고려하여야 한다. 디자인단계는 제품의 외형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제품을 둘러싼 전체 환경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자인의 전체적인 관점은 제품의 사용이나 가공, 생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제 환경친화적인 이슈는 더 이상 하나의 부분이나 요소로 한정되지 않고 총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환경친화에 대한 이슈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제거Remove, 감량Reducing,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ing, 재생Recover 등으로 요약되는 5R 이론이 유효한 것으로 사용되어왔다.1) 그러나 이는 단지 재료와 제품의 물성과 같은 물리적, 경제적 측면이 중시되어 온 것으로서 이는 21세기의 포괄적인 환경 체계에 있어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물이나 제품의 가치의 유용성은 물리적, 기능적 측면과 함께 심리적, 감정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21세기의 시대를 맞아 더욱 중시되어가고 있다. 특히 형태, 재료, 색상, 냄새, 촉감 등, 사물의 감성적 가치의 영역은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물이 보다 장기적인 생명성과 근원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 창조물이 되기 위해서 창조된 사물의 가치는 물리적 가치를 뛰어넘어 심리와 감성적 측면의 가치가 함께 내재되어야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환경친화디자인의 방법으로 기존의 5R의 개념을 넘어, 4L, 즉 Low, Less, Long, Last라는 감성이 중심이 되는 환경친화디자인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감성적이고 심미적인 영역을 강조하는 25가지 환경친화적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감성적 환경친화디자인 영역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미래적인 접근 방향으로써 우리의 전통 사상과 도구 디자인의 방법에서 그 지혜를 구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동양과 한국의 사물의 창조에 있어서는 기능적 가치는 물론 감성과 정신적 의미를 중시하여, 사물에 온전한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하였고, 환경친화적 사물의 창조의 알맞은 관점을 제시하여 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환경친화디자인의 창조의 현재적 해결의 다양한 특징을 4L의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 미래의 환경친화적 창조와 디자인의 방향을 동양의 시각과 함께 보다 종합적인 디자인창조의 관점에서 제안하여 보고자 한다.
환경친화디자인의 현재
1992년 전 세계 지도자들과 대표들은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에서 경제, 환경, 윤리적 문제를 두루 고려하는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합의하는 ‘생태적 효율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이는 환경을 새롭게 인식할 때 얻게 될 이득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주의적 관점이었다. 생태적 효율성은 보다 적은 자원을 사용하고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갖도록 하는 - 환경 보존과 효율성을 함께 이루는 -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적 효율성은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디자인의 혁신으로 환경 이슈를 이끈 『요람에서 요람으로Cradle to Cradle』의 저자인 윌리엄 맥도너와 미하엘 브라운가르트는 이 책에서 ‘생태적 효율성’의 개념은 환경을 그저 덜 파괴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게 생산하고 적게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휴지와 기저귀를 생산하는 기업이 매일 수백그루의 나무를 베어낸다면 이 기업이 친환경적인 노력에 일부 정성을 쏟는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디자인에서 환경적인 이슈는 주로 다음의 고민들로 이루어져왔다. 어떠한 기초적인 재료들이 적합한가? 가장 자연적, 원천적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가?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인가? 에너지나 물을 절약하면서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가? 배출물이 가장 적게 배출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다 사용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쉽게 또는 간편하게 수리되거나 재사용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거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제품을 구입할 때 양심 있는 제품을 선택했고 그 스스로도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을 주는가? 가능한 좋은 제품을 오래 사용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친환경적으로 삶의 방식을 다르게 만드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이해하여 제품의 사용성을 넓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다 환경의식을 고취하게 하고 환경보호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렇듯 이제 사물의 영역의 친환경적 방법은 보다 자원과 생산 중심의 물질적인 것보다는 인간의 생활과 관계된 정신적, 감성적인 요소를 지향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 ‘GEDS’라는 친환경적 연구를 통해 감성적 측면이 물질적인 연구와 균형을 이루는 연구 방법론을 개발한 바 있다.
환경친화디자인의 감성적 가치
이 연구 방법론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Low, Less Long, Last의 네가지 기본 가치Key Value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또한 최소-최대Min-Max의 축으로 배열되며, 이는 생산에 있어서의 환경적 영향과 자원 소비량을 최소화하고Low, Less 사용에 있어서의 성과 및 효용은 최대화Long, Last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기본 가치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쪾Low : 물질적으로는 순수하고 청정한 것을 추구하여, 자연 및 인간에 대한 위해성을 절감하며, 인간 및 감성적 측면에서는 조화, 균형, 무위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
쪾Less : 자연자원의 소모를 줄이고, 생산자 혹은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노력을 덜 쏟으면서도 친환경적인 행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쪾Long : 제품을 오래도록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제품의 물리적, 기능적 지속성을 통해 생산적 낭비를 줄이고, 낡은 것이 아닌 성숙하고 깊어져 간다는 의미를 찾는 것
쪾Last : 이미 생산된 제품을 집약적으로 사용하고 제품이 제공할 수 있는 유용성,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주어진 제품의 활용 및 사용정도를 최대화하는 것
그리고 4개의 기본 가치들은 각 가치 영역별로 물질적, 감성적, 최소와 최대의 양축을 포괄하는 4개씩, 총 16개의 세부개념SubConcept들로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이 세부개념들은 그 아래에 보다 구체적으로 에코디자인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능적Utility, 감성적Aesthetic 측면의 중요한 원리들이 총 50가지로 제안되고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50가지의 원리들은 기능적인 가치Utility와 감성적인 가치Aesthetic로 구성되어 종합적인 측면에서 친환경적인 연구 방법론을 제시한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소홀했던 감성적 측면의 각 25개의 디자인의 실천 항목들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친환경적인 인간 삶과 문화를 지향하는 지침을 마련한다.
이러한 감성을 중시하는 친환경적인 디자인 경향을 전통적인 공예분야에서도 새로운 흐름들로 나타나고 있다. 공예 분야에서도 재료적인 측면과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넘어 새로운 시도로 감성의 확장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tranSglass는 이미 사용된 병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사물로 바꾼 사례이다.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병들은 디자인과 전통적인 공예 사이의 결합으로서 사물에 다른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Heirlooms는 간단한 장식으로서 제품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사례가 된다. 디자이너는 고물상에서 사온 많은 식기들에 꽃무늬를 넣어 그간 무시 받아 왔던 제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또한 하바나 의자는 명상을 하는 공간으로써 앉는다는 기능을 확장시켜 친환경적이며 동양적인 정신적 가치를 의자에 부여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적 전통과 민족문화의 매력을 담는 새로운 의미의 조형을 추구함으로써 조형의 생명성이 확장되는 것이다. 미래 환경친화 디자인과 동양·한국의 조형정신친환경 디자인패러다임의 미래방향은 동양과 한국의 사상과 도구문화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서양은 초자연적인 ‘신의 계율’을, 동양에서는 ‘자연의 도’를 따라야 할 대상으로 각각 상정하여 서양은 ‘정복하고 다스릴 대상’으로서 자연관을, 동양은 융화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 자연을 파악하고 있었다. 동양은 자비의 대상을 자연까지 포함하는 인仁의 사상을 중시하고, 또한 조화를 우선시하는 음양과 중용의 사상을 중시했다. 또한 서구적 세계관이 이분법적이고 직선적인 것이라면 동양적인 세계관은 보다 일원적이고 순환론적인 특징을 가진다. 일회성 소비문화는 직선적, 단선적 세계관의 극단적 표현으로 채취로부터 생산, 분배, 사용, 폐기의 보이는 과정만을 고려할 뿐, 그 이후의 매립, 분해, 퇴적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수천 년의 시간을 망각한다. 동양의 순환적 세계관은 이 보이지 않는 과정을 중시한다. 동양 조형의식의 근간을 이루는 음양, 무巫 사상은 만물의 근간을 이루는 조화와 질서의 원리 위에 구축되었다.
이러한 원리들은 유불선의 사상들을 근간으로 삼고, 친 자연적 성향을 그 바탕으로 하여 우주만물의 원리로서 조화, 합일을 강조하였다. 동양사상에 따른 물질의 생산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 주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조형물은 이어한 사상과 조형원리를 배경으로 생성되고, 사용되고, 폐기되었다. 이와 같은 동양의 전일과 조화를 통한 상생의 철학은 바로 미래 환경친화디자인의 원리로 작용될 수 있다. 동양, 특히 한국의 전일적 세계관은 여러 부분을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로 파악하는 종합적인 사유이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대립적인 시각을 가진 서구와 반대로, 물질과 정신, 주체와 객체 등의 여러 대립적 요소를 근본적으로 하나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관에서 도구와 자연이 대립하지 않으며 인간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닿아 있게 된다. 전일적 세계관에서는 다양한 것들이 한데 모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자연, 사물이 조화되는 어울림의 정신으로, 곧 모든 물건을 만들어 가는 조형의 원리가 된다. 이와 같은 전일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조형의 원리로는 변화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는 상생과 상호보충, 절제와 최소, 융통과 직관의 가치들을 중시한다. 둘째는 조화의 원리이다. 이 원리에서는 상호존중, 평화와 협동, 소통과정, 대화와 교감의 가치들을 중시한다. 궁극적으로 전일적인 조형의 정신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꼭 알맞은 어울림의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어울림의 아름다움은 물질과 정신,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대, 지역과 국제 등이 균형을 갖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일적, 어울림의 디자인’은 이타와 절제, 소통과 협동을 통하여 다른 것과 상호 유익함과 평화롭고 도덕적인 공존을 향해 나가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예로 전통 한국조각보에서는 버려질 조각을 모아 전체 요소간의 협동하고 상생하는 조화와 생명력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디자인문제는 분야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디자인분야에서의 친환경적인 이슈들은 단순한 보이는 생산과 사용 등 물질적 차원의 문제해결보다는 제품생애주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차원의 총체적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유와 무의 순환, 인간과 도구와 자연을 동일시하고 서로 간의 상생을 중시하는 동양의 사상과 자연관은 바로 총체적인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바라보고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일적 사상에 바탕을 둔 한국의 대조화, 어울림의 전통 디자인정신은 바로 생명성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문제해결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대 조화는 인간, 사물, 자연이 우주의 음양원리에 입각한 대 자연의 이치이며, 모든 물건을 만들어 가는 존재의 원리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