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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월호 | 특집 ]

국내도자인의 새 패러다임-생활환경 변화에 따른 도자 디자인 개발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4: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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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연 한국도자기 디자인실장

도자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예산업의 하나로, 여염집의 이름 없는 질그릇에서 분청사기, 청자, 백자 등 예술의 경지에 오른 도예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생활도구로 긴요하게 사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분원이후 지방요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생활도자는 기계생산의 도자개념이 도입된 산업도자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생활 환경변화에 따라 다양한 문양과 형태를 갖게 된다. 역사적 단절의 계기가 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는 융성했던 우리 도자문화의 급격한 퇴락현상을 가져왔다. 그 영향으로 해방시기 우리나라의 식기는 대부분 일본인 공장에서 생산된 왜사기와 같은 사발을 사용하였다. 1940년대에 처음으로 우리자본의 도자기회사에서 산업도자기 백자를 개발하여 생산하였는데 초기제품은 서민용 도자기인 막사발과 대접 등이 주종을 이루었고 문양은 단순한 문자문양이 전부였다.
공업화 초기의 낙후된 상황 하에 생산기반이 취약하던 도자기산업은 6.25전쟁 후 물자부족으로 도자기 공급이 필요함에 따라 대량생산 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 당시 군수품과 함께 들어온 커피문화는 다양한 품목의 서양식 도자기 제품들이 생활도자의 영역에 진입하는 데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투박한 사발, 대접, 찬기 같은 우리나라 식기류와는 다른 조형성을 지닌 서구 양식기 문화는 우리나라 식기도자 디자인과 기술에 많은 변화를 낳았다. 이 시기 국내 도자디자인의 모습은 양식기 형태를 모방한 그릇에 단순한 꽃문양과 가장자리 선을 직접 손으로 그려 넣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산업화의 측면에서 보면 초기 우리 도자기산업은 산업화의 전제조건인 자본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기반시설과 기술력이 전혀 없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1960년대의 수출입국 국가정책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근대적 시설과 기술, 경영체제를 도입, 도자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경제개발 계획추진과 새마을 운동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식생활 문화가 향상되면서 본격적인 도자식기 산업의 근대화가 이뤄졌다. 이때부터 현대 산업도자기의 디자인 표현기술인 전사기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림이 없는 무지이거나 단순한 조각 문양의 한식기가 주류이던 시장에 전사지를 이용한 화사한 색깔과 정교한 문양을 가진 제품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시기부터 장미, 카네이션, 백합 등 많은 서구적인 꽃 문양 디자인이 개발되었다.
 
1970년대 이후 도자산업의 활성화에 의하여 요업관련기업이 육성되어 대규모 공장 중심의 대량생산체제에 들어갔지만 OEM(주문자상표 생산)방식의 대량생산은 우리나라 고유상품이 아닌 서구 디자인 모방에 그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한 경쟁력 약화는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소 뼛가루(bone ash)가 들어간 고급 본차이나 제품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양산체제에 들어간 1980년대에는 도자기 디자인 문양에도 많은 변화가 요구되었다. 해외여행의 자율화와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통해 세계화를 향한 발돋움의 시기였고 더욱 높아진 소비자의 생활수준은 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더 나은 디자인의 제품을 원하게 되었다. 세계화는 역설적이게도 소비자로 하여금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서구 스타일의 디자인이 주류였던 산업 도자에 전통적인 모티브를 응용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장생 디자인이었다. 그 이후 나비, 사슴, 학, 거북이 등 길상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디자인의 소재가 되었고 모란, 연꽃, 당초 등 동양적인 모티브들이 도자 문양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가전제품의 대중적인 보급화로 본차이나 소지(素地)외에 전자레인지나 식기세척기에도 사용가능한 강한 소지(素地)의 제품도 개발되었다. 기존에 전통으로 사용되던 반상기는 현대 식생활 구조에는 실용적이지 않아 접시류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찬기가 포함된 홈세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다용도 기능을 갖는 식기세트가 생겨났다. 도자기 쉐입도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어졌고 여러 가지 쓰임새를 가진 다양한 구성의 제품이 탄생한다.
수입자유화와 함께 국내외에서 외국산 제품과의 경쟁이 본격화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도자기 디자인은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해 고유한 독창성을 지닌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한식기의 디자인은 주로 추상적이거나 화려한 패턴의 문양보다는 정갈하고 자연적인 디자인이 많다 이는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차려내는 우리의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음식문화 유입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생활도자에서도 종합적인 디자인 개념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반상기 중심의 한식기는 부드러운 색감과 자연에서 온 모티브가 주로 쓰이고 서구식음식의 식기는 전체적으로 띠가 들어가거나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디자인이 많았다. 
도자 디자인의 패션화, 구매에 있어서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웰빙의 열풍으로 내츄럴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자연을 상징하는 그린칼라계열의 디자인이 많이 등장하였다. 소비자들의 생활의 여유는 식기가 단순히 음식을 담는 그릇에서 기능까지도 고려하게 되는데 유약에 나노(NANO)기술을 이용하여 은 입자를 넣어 항균작용을 하는 기능성 그릇이 등장한다.

특히 최근의 몇 년간은 도자디자인에 있어 변화의 폭과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 다양한 색채를 지닌 음식이 한상에 올라가는 우리나라의 식탁문화에 어울리는 정갈하고 단아한 무늬의 디자인이 선호되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또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현대인들의 식생활 패턴의 변화로 한식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퓨전음식들이 식탁에 오르면서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형태의 식기들과 화려하고 개성이 강한 문양이 개발되었다. 요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접시의 형태는 점점 커지고 몸짱을 향한 다이어트의 열풍으로 밥을 담아먹는 공기는 점점 작아지는 추세이다. 서구식 아침식사를 하는 가정도 늘고 있어 시리얼이나 빵 접시, 슾 그릇도 많이 보여진다.
한식기와 양식기가 믹스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푸드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또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현대인들의 식생활 패턴의 변화로 식탁위의 상차림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도 자신의 스타일까지도 표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보수적이던 도자기 디자인도 근래에 와서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그 유행의 흐름을 같이 가고 있으며 패션디자이너와의 콜래버레이션(collaboration)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싱글족, 딩크족, 저출산 현상과 같은 가족구성의 변화 또한 구매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와 식기개발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 어린이만을 위한 전용 식기가 만들어지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시즌(season)용 제품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특별한 제품을 원하는 고급 수요층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도자기와 다른 소재와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고 도자기에 크리스탈을 이용한 고급 제품도 개발되어졌다.

도자기가 우리 민족의 자본으로 근대 산업시설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로 60여년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급속한 경제발전과 이에 상응하는 생활문화의 급격한 변화는 국내 산업도자디자인에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이로 인해 한국 산업도자식기업체는 서구 도자기 회사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의 품질과 디자인을 갖추게 되었다. 향후 생활패턴의 변화속도는 정보화의 진전과 함께 더욱 빨라질 것이고 산업도자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빠른 변화의 길을 걸을 것이다. 산업도자 디자인에 있어 이는 고단한 도전이기도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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