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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월호 | 특집 ]

차를 담는 공간 ‘다기茶器’, 마음을 나누는 공간 ‘다실茶室’ - 정목일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3:51:56
  • 수정 2009-06-13 14: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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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다구茶具의 미학
  • | 정목일 수필가

막사발의 미학   
다구라면 용구에 불과하지만 차에 멋을 부여하면 오묘한 미학美學이 된다. 아름다움이란 바깥만을 보아선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다구의 미에는 멋, 풍류, 예藝, 격格, 사상도 포함된다. 미를 보는 안목은 인생 체험과 경지에 따라 다르다.
외형적인 미는 누구나 볼 수 있으므로 평범하다. 미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다. 진실, 순수, 중심, 영원, 우주, 본질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내재돼 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선 쉽게 발견하거나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속에 있다.  
“차 한 잔을 마시자.”는 말은 사소한 말일 수 있고, 일생에 한 번 가질 수 있는 인연의 대화일 수도 있다. 다구에 대한 개념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다구엔 찻그릇, 다상, 소품, 보자기 등이 있다. 찻그릇과 다상이 주조를 이루지만, 그 중에서도 도자품인 찻그릇이 핵심이다. 찻그릇의 미에 대한 관점도 나라와 민족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의 찻그릇은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일본의 찻그릇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외형적인 장식미에 더 치중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찻그릇은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거쳐 막사발로 정착된 느낌이 든다. 중국의 찻그릇을 모란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찻그릇은 매화일 듯싶고, 우리 막사발은 풀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막그릇이란 잡기雜器를 의미한다. ‘막’이란 접두사를 붙이면 ‘아무렇게나’라는 뜻이다. 조선 백성들은 막사발을 밥공기로 썼다. 김치 그릇이나 때로는 막걸리 잔이 되고, 이가 빠지면 개밥 그릇이 되기도 했다. 잘 만들겠다는 마음 없이 그릇을 빚었다. 사발 둘레가 매끈하지 않고 삐뚤삐뚤하다. 굽도 반반하지 않다.
무욕無慾 무심無心으로 빚은 그릇이다. 뽐내려거나 잘 봐 달라는 심사도 없이 막 쓸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자 했다.
그 막사발을 일본인들은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 부른다. 한국의 잡기가 일본 상류층의 명기名器로 둔갑한 이유를 알려면 교토 대덕사라는 절에 있는 그릇의 유래로 넘어가야 한다.
일본 대덕사에 ‘기자에몬오이도喜左衛門大井戶’, 줄여서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는 고려다완이 있다. 16세기 조선에서 건너간 것으로 높이 8.8cm다. 우리 눈에 투박해 보이는 이 막사발을 국보國寶로 지정하면서 일본인들은 “차의 경지가 모두 여기 모여 있다”고 경탄했다.
조선 막사발에 대한 일본인의 경탄은 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일본문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미의식의 감동이었다. 정교, 섬세, 치밀, 군형, 완벽을 추구하던 일본인으로선 처음으로 대하는 미의 충격이었다.
막사발엔 치장, 장식, 과장이 없다. 소박하고 수수하다. 여기서 무욕과 순진무구의 표정을 보았다. 막사발의 밑둥에 흘러내린 유약의 자국이 마치 개구리알과 같이 뭉쳐 있는 것을 그들은 가이라기梅皮와 같다 하여, 예술적인 표현으로 보았다. 막사발을 손으로 잡았을 때 울퉁불퉁한 그릇의 촉감과 차를 따랐을 적에 오는 색감의 변화는 오묘한 미의식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본의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이자 한국 미술 연구가이기도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悰烈는 ‘천하의 명기名器’라며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범범凡凡하고 파란波蘭이 없는 것, 꾸밈이 없는 것, 사심邪心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막사발은 초탈의 미를 지니고 있다. 애착, 집념, 욕심이 없다. 천진무구하고 자유자재의 표정이다. 형식과 미의식도 없으므로 홀가분하고 초연하고 편안하다. 아무리 보아도 이만큼 수수하고 소박할 수가 없다. 모두가 원하는 최고, 최선, 유일, 완벽의 길을 가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빚었을 뿐이다. 꽃이고 잎이고 바위이고 자연 상태 그대로이고 싶었다. 꾸미고 치장하고자 하면 부자연스러워지는 법이다. 밭일을 하다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밭두렁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불만도 없다.
막사발은 흙에다 물을 넣어 빚은 다음, 불로 구워낸다. 도공이 구워낸다고 할 지리도 흙, 물, 불, 공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안 된다. 우주의 기운과 자연의 기氣를 얻어서 찻그릇이 만들어진다.  
중국인은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차를 마시지 않고선 살 수 없다.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차마고도茶馬高道란 교역로가 있다. 인류 최고의 교역로로써 중국 윈난성雲南省, 쓰촨성四川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이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차마고도’란 이름이 불었다. 길이가 5,000km에 이르고 평균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설산들과 강들이 수천 km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이 길을 넘나들었다.
중국, 티베트는 물이 좋지 않아 여행 중일 때라도 차를 휴대해야 했다. 사막지역에선 육식 생활에서 부족하였던 엽록소에 포함된 비타민의 흡수가 필요하다. 차에서 이를 얻었기에 생존의 필수품이 되었다. 수질이 좋은 우리나라의 경우엔 차는 생활의 여유, 멋, 미, 풍류와 어울려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절도와 격식을 강조하는 통치문화의 속성이 담겨 있다.
근래에 도공들이 다투어 막사발을 비롯한 다구들을 생산하고 있다. 찻사발전시회도 주기적으로 열려 명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도공마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찻그릇을 내놓으려는 의식에서 지나친 미의식의 표출과 기교가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우리 막사발의 미는 무기교無技巧, 무심無心에서 오는 초탈超脫의 미이다. 찻잔을 잡으면 한없이 착해지고 잡념이 사라지는 듯 편안함을 준다. 밥상을 차리고, 빨래하는 어머니의 표정이다. 번쩍거리고 화려한 비단이 아니라,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던 무명 치마처럼 포근한 품과 깊이를 지녔다. 서민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찻그릇이어야 한다.  

차상茶床의 미학
다구들은 차상茶床에 놓여진다. 차상은 목재여야 제격이다. 차상으로 느티나무, 소나무 등 통나무를 켜서 쓰기도 한다. 1백년 이상의 고목이면 더욱 좋다. 나무 차상의 미는 나이테의 무늬인 목리문木理紋에 있다. 훌륭한 소목장小木匠: 목가구품 만드는 장인은 고목의 겉모습을 보고도 나무가 품은 목리문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훌륭한 석공이 정으로 바위를 한 번 쳐 소리를 들어보는 것으로 바위가 품은 성격과 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이치일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월간도예 2009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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