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도자전문 화랑
일본의 도자전문 화랑
글/사진 정희균 일본리포터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이 매우 활발한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화랑과 도자전문 판매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가 대표적 유통이다. 이러한 일본의 도자전문 화랑과 수공도자전문 판매점은 일견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왜냐면 그런 전문 판매점에서도 종종 개인전이 열리고 규모나 외양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판매점이 대체로 여러 ‘공방 도예가’들의 작품을 모아두고 물건 고르기의 폭을 넓혀둔 데 비해, 전문 화랑은 그 화랑주의 감식안이나 기호에 따른 개성을 지니면서 주로 ‘개인작가적 의미의 도예가’들의 작품을 많이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작가적 도예가란 주로 일품제작적인 기(器) 작업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창작 도예가를 의미한다. 또한 공공적인 성격의 도예전문 미술관과는 달리, 도자전문 화랑은 수익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도예작품의 발표와 판매가 함께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도자전문 화랑에 초점을 두면서 일본 전역의 도자기가 모여드는 도쿄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도자전문 화랑의 성격과 경향
도쿄에는 도자를 포함한 공예 전반을 취급하는 공예전문 화랑도 많지만, 역시 도자기만을 다루는 도자전문 화랑이 보다 많다. 이는 일본에 유난히 도자기 애호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영역에 전념하는 소위 ‘전문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와 구체적이고 실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성향도 그 배경의 하나라 생각된다.
이러한 일본의 전문 화랑들은 대관전 없이 기획전과 상설전시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점은 해당 전문 화랑으로서의 성격이나 가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너의 안목에 따른 작가 선택으로 일정한 질과 성향의 안정된 전시활동이 이루어져, 고객에게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화랑에 대한 신뢰감을 주게 된다. 또한 팔린 작품의 수익금은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 때문에 작가도 화랑도 해당 전시에 대해 적극적이고 진지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설령 대관전을 한다해도 돈을 벌어야할 입장의 도예가가 제 돈을 내고 전시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환경이므로 대관전시란 일반 화랑에서 있는 조각적인 도자전시의 경우 외엔 그리 흔치 않다.
한편, 한 마디로 도자전문 화랑이라고는 해도 실은 다양한 타경향으로 나뉘어 진다. 다시 말해 수만 여명에 달하는 직업적인 도예가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도자기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화랑이 취급하고 있는 작가나 작품 등에 의한 일정한 구분 없이 그 화랑들을 언급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무슨무슨야키(∼燒) 전문화랑’(아리타야키, 비젠야키 등등) 들이 있는데, 이는 봉건시대부터 지방의 영주들에 의해 보호·육성되어온 특정 지역이나 기법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곳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적인 감각의 도자기가 위주인 곳, 전통적 감각의 개성 있는 생활도자기가 위주인 곳, 심지어는 소위 도조작업과 실용적인 기 작업을 병행하는 도예가를 중심으로 다루는 곳 등 작품의 스타일에 의한 구분이 가능한 화랑이 있는가 하면, 인간국보(한국의 인간문화재에 해당)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곳, 작고한 유명도예가의 작품을 위주로 하는 곳,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신진도예가의 것을 위주로 취급하는 곳 등 주로 화랑의 여건이나 고객의 타깃을 분명히 한 화랑들로 구분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에 구애되지 않고 여러 가지 풍의 도자를 함께 다루는 곳도 있다.
이러한 도자전문 화랑은 보통 백화점 내에 있거나 화랑가나 주택가 등지에 있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시내의 큼직한 백화점에서는 대개 도자전문 화랑이나 상설 공예살롱을 두고 매주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유명 도예가나 비교적 고가의 작품이 위주로 전시되는데, 전문적인 큐레이터에 의한 ‘기획’이라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판매고 중심’의 경향이 높다.
이에 비해 수적으로 보다 많은 다른 화랑들은 사정이 제각각 다르다. 비싼 도자기가 일종의 재산가치적 대상이 되는 일본의 풍토상, 오래되고 이름높은 화랑에서는 한 작품에 보통 수십∼수백 만엔(수천 만원 상당)에 이르는 인기 작가들의 것이 다반사로 거래되는데, 거의 비지니스 개념의 운영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와는 사정이 다른 일반 도자전문 화랑들은 비교적 신진작가나 유망작가들을 위주로 다루며, 도로의 이면가나 주택지 등에 흩어져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런 곳에서는 언제든 작가나 오너와 도자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분위기도 많아, 사업 이전에 일종의 사교적인 장이 마련되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화랑들은 사람의 통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과연 운영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후미진 곳에서 전시를 하더라도 올 사람들은 대부분 찾아와 하나씩이라도 사갈 정도로 인간관계가 대단히 중요시되는 풍토이기 때문에 화랑의 운영은 평소에 확보해둔 고객에 의해 좌우된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적절한 가격 설정과 작품이 좋아야 함은 기본이겠거니와 화랑 측이나 작가도 모두 고객 관리나 팬 확보에 무척 열심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기까지는 화랑만이 아니라 도예가들도 인내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 외에도 기업이 세워 비영리적으로 운영하는 도자전문 화랑이 있다. 예를 들어 ‘TOTO’란 상표로 널리 알려진 요업회사인 INAX는 전국 대도시에 몇 개의 도자전문 화랑과 큐레이터를 두고 작품발표의 기회를 희망하는 젊은 도예가들에 한정해 작품을 소개한다. 이곳은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 선발된 신예작가의 전시 팜플렛과 홍보 그리고 한 달간의 개인전 모두를 지원하고 있다.
작가와 오너, 그리고 고객
이름있는 도자전문 화랑이나 백화점의 도자전문 화랑 등은 이미 오래 동안 운영돼온 가운데 맺어진 유명 도예가나 고객의 인적 네트워크를 비롯한 유형무형의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화랑의 질적 수준을 유지·향상시키는 점에 무게를 둔다. 전시에 관한 별다른 안내 없이 가더라도 언제든 일정수준 이상의 작품전이 있고, 좋은 작품 혹은 인기 작품을 사두려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도쿄의 한 복판에 있는 미쓰비시 백화점(본점)에는 도자전문 화랑 등 몇 개의 전시실과 도예 상설전시판매장 등이 복합된 약 600여 평 넓이의 공예살롱이 있는데, 연중 내내 개성적인 도예가들의 개인전이 이어지고 건너편의 상설전시장에는 엄청난 가격의 유명 도예가들의 작품이 판매되고 있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이 팔리는 모습은 일본의 젊은 도예가들에게도 커다란 자극이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곳은, 말하자면 도예가들의 메이저리그라 할 만한 무대이자 마이너리그 격인 작은 전문화랑 등을 통해 점차 성장해온 중견 도예가들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러한 화랑과 도예가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도자전문 화랑은 대부분 그 화랑에서 취급하는 도예가가 몇 명 혹은 몇십 명씩 있기 마련이다. 일종의 전속작가와 유사한 것인데, 오너의 취향이나 안목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로서 작가는 해당화랑 외에도 타 지역의 몇몇 화랑에 걸쳐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전시(기획전)는 대개 해당 화랑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개인전으로 구성되며, 중간 중간에 가능성있는 신진작가의 개인전도 개최한다. 의욕있는 오너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전시장에도 가보고 작가의 작업장을 순례하며 ‘인연’을 맺을 작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한번 맺은 ‘인연’은 작가나 오너나 이를 매우 중시하며 오래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관계는 작품을 사가는 손님들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므로, 작품을 납득하고 사간 손님과 작가 혹은 오너간에는 일대일 혹은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그후로도 작가나 화랑의 발전과정을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그야말로 서로간의 ‘인간사슬’을 이루어간다. 때문에, 일례로 약간의 흠이 있다거나 똑같은 작품을 작가가 계속 출품하기란 그 화랑에게도 폐를 끼치게 됨은 물론, 나아가 화랑은 단골 고객에게 면목이 안서는 식으로 이어져 서로간의 신용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되므로, 작가는 작가대로 화랑은 화랑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엄격한 자기관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실로 일본 특유의 사회적 환경이랄 수 있겠다. 따라서 신설 화랑일수록 작가의 성장과 전문 화랑의 성장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며, 기존의 이름있는 화랑들도 대개 이런 과정을 함께 한 내력이 있는 것이다.
기획, 전시, 판매 및 관리
화랑의 시설과 넓이는 화랑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대체로 소규모의 아늑한 공간인데, 이는 실리를 중시하는 일본의 풍토도 있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크기가 비교적 작으며 주로 집안이나 편안한 실내공간에 놓여지는 도자기의 특성과도 관련된 것이다. 전시대 역시 벽면을 따라 빙 두르는 붙박이 전시대이거나 가변성을 줄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전용 전시대이다. 조명도 고가의 작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등의 전문화랑 이외에는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잘 쓰지 않으며 전시장 전체를 밝고 편안한 분위기로 한다. 이것은 직접 만지고 쓰는 도자기의 성격상 인위적인 조명에 의한 연출이 작품을 보는데 방해가 되는 이유도 있고, 손님이 작품을 사서 놓아둘 실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보다 쉽게 이끌도록 하는 매우 실리적인 이유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본 도쿄의 도자전문 화랑 중에서는 1년에 4회의 기획전 이외에는 모두 상설전시만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1년을 일주일 단위의 개인전으로만 운영해나가는 경우도 있다. 또 판매액은 작가6:화랑4 혹은 작가7:화랑3의 비율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며 유명 화랑들은 대개 6:4의 경우이다.
또 전시의 홍보물(DM)은 대부분이 엽서 한장으로 끝나며, 팜플렛을 만드는 경우는 상당한 매상이 기대되는 백화점의 큼직한 개인전 등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렵다. 필자가 관계하는 도쿄의 한 도자전문 화랑은 전시 1년 전에 이미 다음해의 전시일정이 잡히는데, 이에 대한 화랑과 전시 홍보의 수단을 겸해서 엽서 외에 전시 일정과 작품, 그리고 작가를 소개한 해당 년의 달력을 매년 제작해오고 있다. 이로 인해 화랑의 손님들은 물론 작가와 관계된 사람들도 평소부터 전시날짜도 기다리며 달력의 작품도 감상하는 등 좋은 이미지를 품는다.
한편 최근에는 도자기에 관련한 종합적인 인터넷 사이트(www.yakimono.net)를 통한 전시 홍보나 판매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도자기 구매자의 연령층이 중년 이상인 점과 직접 작품을 보고 구매욕을 갖게되는 특성상 일본에서는 아직 그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도자전문 화랑의 수는 필자가 조사한 범위 내에서, 도쿄에만 40여 곳이 넘으며 전국적으로는 100여 곳을 넘는다. 여기에 도자기를 포함해 다루는 공예전문 화랑과 기타 화랑을 더하면 훨씬 늘어난다.
이처럼 도예작품에 관한 일본의 활발한 유통은 그들의 혜택받은 환경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이유를 그들의 경제력으로 쉽게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보다는 도예에 관한 그들의 역사적인 미학과 더불어 서구 미술론이 아닌 자신들의 미의식에 기반한 독자의 심미안, 그리고 현실 속의 문화적 환경과 생활에 밀착된 화랑주나 작가들의 구체적인 노력 등이 보다 근본적이라 이유라고 생각된다. 또 그렇게 보고자 할 때,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있지 않겠는가 싶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도자전공)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예과 도자전공 졸업 일본 국비(문부성) 장학생 일본 도쿄예술대학 도예연구실 연구생과정 수료 전, 가야대학교 요업디자인과 전임강사 역임 경원대, 창원대, 부산여대 강사 역임 현,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도예전공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