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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월호 | 뉴스단신 ]

증발해버린 주제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고한다
  • 편집부
  • 등록 2008-03-05 17:07:10
  • 수정 2008-12-24 17: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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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해버린 주제
200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고한다
글 김영민 미술비평가

 

본전시 - 공예의 가치와 의미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본 전시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서>는 공예가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가치라고 말하는 수공예적 가치, 생활관련 가치 그리고 예술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공예’가 현대화 혹은 그 이후라는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잃어버린 본래적인 가치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되살릴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되살리고 혹은 향후 찾을 수 있는 가치가 있으면 찾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공예라는 것이 현대화 과정에서 공예가 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현저하게 약화시켜’ 왔으며, ‘현저하게 바뀌어 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논리나 제작들의 요구를 늘 안고 있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또 하나의 본전시인 <삶에 대한 형식>의 경우는 공예가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제의, 유희, 소통, 생명, 일 등으로 나누고 그것에 합당한 작품들을 전시하여 우리의 삶에서 공예가 가지는 의미와 형식들로 구성하려 하였다. 공예가 우리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공예의 입장이 아닌 사회적 형식으로 구성하는 참신함이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특히, 국가별 공예품을 전시하여 공예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의의를 좀 더 친밀한 방법으로 보여주려는 ‘친절한’ 시도는 기획자가 현재 우리의 삶에서 공예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형식의 본전시의 취지 혹은 안타까움 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본 전시는, 그 구성면에서 공예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어야 하며’ 현재는 ‘무엇인가’하는 반성적 태도 그리고 새로운 의미관계를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고, 대답해보려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서사적인 짜임새가 (여느 해 보다) 한결 좋아보였다. 그러나 이전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가들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혹은 배제했기 때문에) 기획자의 전시 개념이나 주제를 만족시킬 만한 작품을 선정하는데 어느 정도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기획자가 전시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합당한 작품을 선정하는데 정보의 부재도 한몫했다고 서문에 쓰고 있지만, 정보의 부재 이외에도 공예라는 것에 대해서 혹은 창작이라는 것에 대해서 기획자의 생각과 실제 창작자의 사고의 간극이 작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전시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전시의 주제는 개최년 마다 바뀌는데, 작품의 경향은 별반차이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정보의 부재라기보다는 초대되고 전시되는 작품들이 대충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는 ‘유사성’ 때문이라고 보인다. 역대 전시주제들과 작품들을 뒤섞여 놓아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전시가 될 것이며, 주제는 흡사 요식행위이거나 전시에서 사라져 버린다. <제5회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서>중에서 작가는 어디 출품한 것일까? 라는 말도 안 돼는 질문을 해본다.
  전시의 구성면에서는, 본전시장 전체가 개념이나 주제로 구획되어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동선 상에서 마주치는 표찰이나 제목들이 보고 지나간 작품과 앞으로 볼 작품들의 경계로 작용하지 못하고 전시장 전체가 흡사 하나의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본전시가 열린 메인 공간이 동선을 만들기 힘든 공간이었다는 것에도 기인하겠지만, 되도록 기존의 전시관행에서 벗어나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실재 전시에 있어서는 좀 정리가 되지 않은 양상으로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모전 - 주제공모라는 것
전시장 입구의 <창조적 진화>라는 공모전의 타이틀 보면서 ‘깊고 느리게’나마 진화된(혹은 되는) 공예작품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창조적 진화라는 주제가 과연 공모전 작품의 내용을 결정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창조적 진화라는 말과 전시된 작품들 간에는 그다지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에 조금 실망했다. 여기서 ‘조금’의 실망은 주제와 작품에서 연관성을 찾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여타의 전시에서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진화라는 말과 전시된 작품들과의 모종의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공모전 도록의 심사평, 수상소감, 작품설명들을 읽어 보았으나, 왜 창조적 진화라는 주제가 공모전에 제시가 되었는지 혹은 창조적 진화라는 주제에 합당한 작품을 선정하려 애를 먹었다든지, 작품제작에 있어서 창조적 진화라는 주제를 소화하려 했다든지 하는 말은 거의 없어 헛품을 팔고 말았다. 도록을 찬찬히 읽어본 후 필자의 머리 속에는 <창조적 진화>라는 말만 어지럽게 돌아다닐 뿐 작품은 하나씩 지워졌다.
출품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예년보다 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한다.(1차 심사평) 그러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기보다는 출품작품이 많아지면서 조금 질적인 향상이 이루어진 정도가 아닐까 한다. 다만 예년에 비해서 서사적이거나 형식보다 내용을 담아보려는 시도는 점차 많아지는 것 같다. ‘발명특허’같은 특유의 기법이나 방식들 그리고 기술을 담보하는 형식에 목매달던 것에서 이번 공모전은 조금 자유로워진 듯하다. 그러나 심사기준은 여전히 기술의 이름으로 혹은 기술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창의력을 우선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화는 깊고 ‘느린’가 보다.
공모전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본전시와 공모전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듯싶다. 본전시가 현재의 것이라면 공모전은 다분히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동거리가 너무 멀어서 비교가 거의 불가능했다.

기타 - 특별전과 공공 프로젝트
<이탈리아 공예전>이라는 특별전은 먼 길 간 의외의 소득이었다. 아주 잘 만들어진,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잘 정리해놓은 전시였다. 예술작품이건 물건이건 일정한 공간을 점하고 남들에게 보여줄 때, 유쾌하고 기분 좋은 것들이 있는데, 이 전시는 작품들의 세련미와 절제 그리고 그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는 진열(?) 방식들로 인해서 조용하지만 유쾌한 감정을 자아낸 듯하다. 보편적으로 공예적이라고 하거나 공예전시라고 하는 전형적인 틀을 제시하는 전시였던 것 같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경우는, 많은 작가가 초대되고 지명되고 공모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초대작가와 지명작가 그리고 제한적 공모작가가 구분되는 딱히 의미 있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많지 않은 예산으로 너무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 가지는 기념비적인 성격이 많이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하나나 둘 정도의 작품으로 그 해 비엔날레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체계의 분류나 공예자체에 대한 접근의 진지함, 전시의 서사적 구성들이 예년에 비해서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 동선이나 전시의 진행면에서는 장소 및 예산의 한계 때문에 유사하게 보일 수 있지만, 향후 공예가 나가야 할 진행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전환점 혹은 그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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