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우리가 기다릴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이어 경신 대기근 -(조선 현종 11 년/1670〜12년/1671)에 걸쳐 발생하였으며, 사망자 수가 10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됨- 과 같은 국가적인 대재앙이 지나가고,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독서와 그림 감상의 취미가 서서히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그림 수요가 늘면서 그림 감상은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됐다. 이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장식용 화조화나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성이 담긴 길상화가 다수 그려졌다. 그 후에 한참 지나 상류층의 고급 미술 내지는 정통 미술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값싼 소 비용 그림인 민화도 등장했다.1) 이를테면, 춘향전 속에 나오는 춘향의 방에 수십 점의 그림이 걸려 있을 정도로 민화가 서민층에 보급되었다는 것은 전쟁과 기근을 넘어 따스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존의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에게 예술에 대한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회가 생존을 보장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한 사회에서 사람은 따뜻해지고 따뜻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은 비단 개인의 사적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정서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진정한 사랑의 회복은 사회의 해방을 불가피하게 전제해야 한다.2) 그래서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선 화단에는 진경산수화와 더불어 풍속화가 크게 발전하고 유행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 유입의 영향과 그로 인한 영·정조 연간의 취미의 변화, 그리고 서민 생활의 융성과 발전에 따른 서민층의 회화 소장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3)

그림 1) 「모란도」85x47cm | 8첩 병풍, 종이에 채색 | 19세기
민화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던 전쟁과 기근을 넘어 이제는 삶 속에서 더욱더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고 싶은 서민들의 애환과 소망이 깃들어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1에서 처럼 풍성한 모란을 집 안에 들여놓음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복을 기원하게 되었고, 건강과 사회적 신분 상승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화 속에 등장하는 모란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채색을 할 때 물감의 흘림과 번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민화가 단순한 채색과 도안을 특징으로 하는 것은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위함이었지, 동양화 채색의 가장 큰 특징인 흘림과 번짐을 고의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림 4에 나오는 무필연침 기법으로 표현된 모란은 민화의 뜻을 본받으면서도 동양화의 가장 큰 매력인 물감의 흐르고 번지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표현을 보여준다.

그림2) 「책가도」186x419㎝ | 8폭 병풍, 종이에 먹·안료 | 19세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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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철규, 『조선시대 회화』, 마로니에북스, 2018, 170쪽
2) 이하준,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책 읽는 수요일, 2016, 164 쪽
3) 임두빈, 『한국 미술사 101 장면』, 가람 기획, 2009,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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