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쌓아 층층이 패턴을 빚는 연리문連理紋. 조신현 작가는 이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연의 흐름과 시간을 도자에 담는다. 물레와 붓, 손끝에서 피어나는 그의 작품은 흙의 물성이 자연의 숨결로 변하고, 장인의 미감으로 완성된다. 전통과 현대가 얽힌 그의 연리문은 현대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조신현 작가는 연리문 기법을 현대 도예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요소라 말한다.
“전통 공예는 실용성을 기반으로 했지만, 현대 도예는 개념적 예술로 확장되고 있어요. 연리문은 이 둘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죠.” 그는 연리문의 본질을 ‘시간을 담아내는 기법’으로 정의하며, 이를 통해 감각적이고 개념적인 도자를 실현하고 있다.
「선의흐름(器)」
◎ 작업 철학과 연리문 기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 작업은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간을 축적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이에요. 도자기는 손의 움직임과 시간이 쌓여 완성됩니다. 흙이 물과 만나 촉촉한 질감을 띠고, 붓질로 층을 이루며, 가마의 불을 통해 연리문은 이런 철학을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기법이에요. 서로 다른 색의 흙판을 겹쳐 선과 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무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아요. 흙이 쌓이고 깎이는 과정을 통해 기물의 조각 깊이에 따라 다양한 선이 드러 나며, 이는 조형성을 창조하는 본질적인 행위입니다. 전통 연리문이 자연의 미감을 중시했다면, 저는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주해 새로운 표현을 탐구합니다. 색 점토를 층층이 쌓아 기하학적이거나 자유로운 흐름을 만들고, 깎아내며 흙의 숨결을 드러내는 과정은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담아내는 도구가 됩니다. 연리문은 장식적 기법을 넘어 도자의 본질적인 조형성을 표현하며, 현대 도예에서 실험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선의흐름(器)」 15×15×15cm, 15×15×25cm, 15×15×27cm, 15×15×31cm
◎ 기술적 접근과 조형성은 어떻게 구현되나요?
저는 흙을 캔버스처럼 다룹니다. 붓 터치로 흙판의 두께를 조절하고, 다양한 색을 중첩해 깊이 있는 조형성을 끌어냅니다. 붓질 횟수를 달리하며 흙판의 질감과 층을 미세하게 설계하고, 이를 쌓아 원하는 형태를 위한 흙덩어리를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색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신경 써요. 예를 들어, 밝은 백토와 어두운 적토를 겹칠 때, 물레 위에서 회전하며 생기는 흐름이 서로의 경계를 부드럽게 녹이거나 선명하게 분리되도록 조율합니다. 이런 섬세한 조절이 연리문의 조형성을 결정짓죠.
석고판과 색 슬립을 활용해 도자의 섬세함을 더하는 것도 중요한 접근이에요. 석고판에 슬립을 얇게 펴 층을 쌓고, 건조 후 물레로 형태를 잡아가며 흙의 물성을 탐구합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유도하는 게 핵심이에요. 손잡이 같은 작은 요소도 기능성을 넘어 미적 가치를 높이도록 디자인합니다. 자연에서 영감받은 부드러운 곡선을 손잡이에 담아, 도자기의 차가운 인상을 따뜻하게 바꾸죠. 예를 들어, 나뭇가지의 휘어진 선이나 물결의 흐름을 닮은 곡선은 손에 쥐었을 때 편안함을 주면서도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유약 대신 표면을 연마하는 방식도 제 작업의 특징이에요. 연마하면 차돌처럼 단단한 질감과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촉감이 살아납니다. 이는 도자기를 생활 용기에서 감각적 오브제로 확장시키죠.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온기와 깎인 면의 미세한 결이 사용자와 교감하며, 생활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선의흐름-휴식」 35×15×13cm
◎ 현대 도예에서 연리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통 도자는 실용성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현대 도예는 조형 예술, 설치 미술, 개념 미술과 결합하며 새로운 매체로 확장되고 있어요. 연리문은 이런 흐름에서 미학과 기능성을 조화시키는 기법이에요. 흙을 쌓아 층을 만들고 깎아내며 자연의 흔적을 담는 과정은 도자기가 시간과 함께 변하며 사용자와 교감하는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저는 도자가 생활 용기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길 바랍니다. 현대 도예에선 자기 인식과 개념적 표현이 중요해요. 연리문은 이를 실현할 잠재력을 가졌습니다. 색과 질감의 층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장인의 의도를 담아내며, 실험적 접근으로 새 소재와 기법을 탐구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전통적인 색 점토 외에 현대적 재료를 접목하거나 설치 공간에서 도자의 조형성을 부각시키는 작업도 가능합니다. 저는 도자를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로 봅니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감각과 경험을 풍부히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해요. 연리문은 이런 현대 도예의 여정을 새롭게 열어주는 기법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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