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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월호 | 작가 리뷰 ]

도예가 한종규 흙으로 구현한 순수 추상
  • 박은경 성남문화재단·성남큐브미술관 큐레이터
  • 등록 2025-04-02 11:43:35
  • 수정 2025-04-02 11: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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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ation」 39.5×39.5×6cm | 슬립캐스팅, 슬립소지, 안료, 백매트유, 수금 | 2022


최근 동시대 도예의 흐름을 살펴보면, 현대 도예가 현대미술에서 다루는 다양한 표현기법이나 작업의 주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작가들의 작업 주제에 있어 다변화가 이루어진 점이 주목된다. 형태와 색상 등 기본적인 도자의 조형 요소에 주목하거나 전통 도예를 계승하는 작업 외에, 개인의 기억, 체험, 집단과 국가적 정체성, 신화와 역사, 과학기술, 기후위기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류가 공유하는 행성적 차원의 모든 서사narrative가 다양한 도자 예술로 구현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도자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국내외 다양한 전시 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대 도예의 흐름 속에서, 순수한 추상미술을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인 조형 도예를 선보이는 도예가 한종규의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조형적 측면에서 ‘미니멀리즘 미술Minimalism Art’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한종규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을 함께 호흡하며 확장 중인 현대 도예의 무한한 가능성과 독자적인 예술성을 발견하게 한다. 

전통 도예의 형식과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방된 한종규의 작업은 그 자체로 순수한 도예의 물성materiality과 추상미술을 구성하는 조형적 요소가 혼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하학 도형의 무한한 반복과 나열, 회화의 평면성을 연상시키는 단색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작업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미술사에서는 어떠한 사조를 작업에 참조하고 있을까? 

처음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그의 작품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20세기 추상미술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과 테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 1883-1931) 등이 남긴 ‘기하학적 추상geometric abstraction’의 유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종규의 작업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현대 도예의 조형 언어로 오마주 hommage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20세기 초반, 예술가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실감 나게 묘사하는 것, 즉 회화에서 ‘재현’에 대한 가치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미술이 특정한 목적이나 재현, 계도 등을 위해 창작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하며, 자연과 인간의 존재가 모두 소거된, 지극히 ‘예술을 위한 예술’, 순수하고 지적인 조형미의 시각적 구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이 꿈꾼 유토피아적 세계에서 예술의 본질과 절대적인 미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기하학’이었다. 기하학은 예술의 무결함과 순수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최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기하학은 고도의 미학 원리이자 국경 없는 언어였으며, 르네상스시대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물론 미술과 음악, 건축 등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아래, 한종규가 기하학 도형으로 백자 유닛unit을 제작하는 이유 또한 순수한 조형미의 시각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종규는 단국대학교 도예학과를 졸업한 뒤, 당시 유행한 환경도예와 ‘도벽陶壁1)’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10여 년 간의 유학 시절을 보냈다. 일본 교토예술대학京都芸術大学에서 석 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환경도예를 연구하며, 전통 도벽의 재해석을 작가로서 지속하기 위한 몰입과 준비의 시간을 거쳤다. 한종규의 작업은 미니멀리즘 회화와 조각의 조형 요소가 혼재된 듯한 구조적이고 명료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종규의 작업은 흙에서 출발했으며, 흙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상상이 감각적으로 구현된 도예라는 것이다. 

작가 연구를 위해 진행한 미팅에서 한종규는 자신을 도예가가 아닌 ‘설치미술가’라고 소개했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수백 개의 백자 유닛이 가득했다. 


「variation」 66.2×56.7×6.5cm | 슬립캐스팅, 슬립소지, 안료, 백매트유, 수금 | 2018


“과거 삼국시대에도 ‘꽃담’이라는 벽 장식이 있었습니다. 실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삼국 사기』와 같은 고문헌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꽃담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그 일부가 존재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주거 양식이 변했는데 과거 건축 양식인 꽃담의 장식을 그대로 옮겨놓을 수는 없기에 현대 주거환경에 맞게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벽 장식을 도자로 표현하는 것이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국하여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작업인 「빛과 그림자」시리즈는 인간이 지닌 양면성과 고유한 내면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이 작업은 한종규가 환경도예가로서 처음 선보인 작업이다. 사각형의 백자 유닛들로 구성된 「빛과 그림자」시리즈는 인간의 내면을 순수한 백자 유닛으로 시각화하였고, 외부적 요인인 빛에 의해 자연스레 그림자가 지도록 의도한 도예로 구현한 일종의 설치 미술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Variation」시리즈는 최근까지 한종규가 주력하고 있는 작업이다. 「Variation」시리즈의 초기작을 살펴보면, 정사각형의 백자 유닛을 격자 그리드 형태로 배열하고, 컬러 유닛을 화면의 한가운 데 배치하는 등 작품에서 백자 유닛의 비율이 더 높고, 컬러 유닛은 작품의 중앙에 시각적 포인트를 주는 형식으로 배치가 되어 있다.


「빛과 그림자」  39×53×6cm | 슬립소지, 산화소성, 수금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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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종규(b.1972)는 단국대학교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일본 교토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23년 KCDF갤러리 개인전 등 총 9회의 개인전 개최 및 다양한 그룹전에 참여했다. 

2025년부터 세종사이버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대학 강의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3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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