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한국 도예 작가들
미국에서 작업하는 한국 작가들에게 “이곳은 집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익숙한 고민일 것이다. 특히, 도예라는 매체는 물성과 시간성을 품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특성을 가지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흙을 빚고, 가마에 불을 지피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탐구하게 되고, 태어난 곳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캔자스 시티에서 활동하는 한국 도예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미국적 맥락 속에서도 한국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어떤 이는 한국의 도자 전통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현대 도예를 탐구하고, 또 다른 이는 미국에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문화적 혼종성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그들의 작업에는 이동성과 정체성, 익숙함과 낯섦,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문화적 배경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글에서는 캔자스 시티에서 작업하는 한국 도예 작가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어떻게 미국에서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만들어가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그들이 이곳에서 어 떻게 예술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신의 작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도예라는 매체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탐색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흙을 통해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 도예 작가들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임다은_ 기능과 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
임다은 작가는 2024년 뉴욕 주 알프레드 대학Alfred University에서 학업을 마친 후, 현재 캔자스 대학University of Kansas의 ICRC(Interdisciplinary Ceramics Research Center)에서 레지던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도예 연구기관 중 하나인 ICRC는 기능적 도자기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조형적인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곳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임다은 작가는 사물이 가지는 기능성과 의미의 틀을 흔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기능의 실용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물건이 쓰임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해석하는가? 실용성과 개념 사이의 애매한 경계를 탐구하는 그녀의 작품은 정형화된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ICRC에서의 활동은 그녀의 작업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연구 중심의 도예 환경에서, 그녀는 기존의 도예적 어휘를 확장하고, 재료와 개념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캔자스 지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녀의 작업은 전통적 도예의 쓰임새를 비틀면서도 동시에 재료가 지닌 본질적인 물성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는 미국적 도예 문맥 속에서 더욱 흥미로운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는 도자가 기능적 오브제와 예술적 조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매체로 자리 잡았지만, 임다은 작가는 그러한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면서 사물이 의미를 형성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자 한다.
임다은 「불안한 임시 거주자를 위한 발가림 Feet blind for nervous squatters」 60x15x90cm | 석기, 바퀴 | 2023
이혁_ 문화적 내러티브와 감정의 용기
이혁의 작업은 문화적 배경, 종교적 영향, 그리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드로잉과 조각을 통해 탐구하며, 유머러스한 위트를 가미한 독창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한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개, 호랑이, 악마, 천사, 슈퍼맨이 된 자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는 개인적인 성찰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Vessel용기로 기능한다.
미국 조지아 대학University of Georgia을 졸업 후 현재 케이씨 클레이 길드KC Clay Guild의 장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하고 있는 이혁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정체성을 탐색하고, 흙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를 작품에 결합하여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내며, 감정 적 경험을 보다 복합적으로 구성한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단순한 조형적 표현이 아니라, 트라우마, 불안, 욕망, 갈망과 같은 감정적 풍경을 반영하는 존재들이다. 예를 들어, 호랑이로 변장한 개는 강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나약한 자신을 은유하며, 이러한 이미지들은 한 국 문화와 팝 문화를 조화롭게 결합한 형태로 표현된다. 이혁은 흙이라는 매체를 단순한 조형적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독특한 매개체로 활용한다. 도자는 역사적으로 특정 시대와 문화의 흔적을 담아왔으며, 그의 작업에서도 흙은 제작자의 신체적 흔적을 통해 감정과 언어를 담아내는 도구가 된다. 캔자스 시티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문화적 정체성을 오가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
이혁 「인물화 그림이 있는 꽃병 Figurative Painting- Vase」 25x18x19.5cm | 도자기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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