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 YOUNG ARTIST]
작 업 의 궤 적 을 아 카 이빙 하고 시 대 의 불 편
한 진 실 을 들 추 는 예 민 한 철 학 가
문혜주
글. 한정운 경기도자박물관 큐레이터
포개 앉기 Lap-sit
하얀색의 몸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기묘하게 얽히고설킨다. 마치 미지의 세상에 내던져진 물컹거리는 기이한 생명체같이, 여러 갈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다시 솟구치고 오르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촉각적으로 인지하며 움직이던 하얀 몸은 이전의 움직임을 기록하듯 몸에 둔탁한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나의 포즈로 멈춘다. 이제 하얀 몸은 이것이 본래 여러 개의 몸이었는지 하나의 몸이었는지, 무엇인가가 점차 성장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세포나 생물마냥 유연하게 몸을 증강한 결과인지, 무엇이 어떤 구조로 작동한 결과물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내놓여진다. 우리는 이 정지된 하얀 몸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알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왜 이 하얀 몸은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일까? 이 정지된 하얀 몸은 2021년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문혜주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스펙타클사이비휴먼 신화>에서 전시되었던 두 개의 오브제들이다. 「포개 앉기」와 「포옹」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오브제들은 의자의 형태를 가진 조형물로, 당연히 생명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오브제들의 타이틀이 풍기는 인간성을 뒤로 하고서도, 그것의 동세와 포즈는 마치
운동성이 있는 생물을 연상케 한다. 더욱이, 작가가 ‘몸’의 ‘상호교류성1’과 ‘감각하는 사물2’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오브제들을 제작하였다는 점은 우리가 단지 오브제를 작가의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만든 사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 작가가 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없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작업에 있어서) 형태 연구는
신체와의 밀접한 작용으로 사물을
탐구하며 이뤄진다. 이는 불완전함과
동시에 확장하는 몸에 대한 연구이기도
한데, 단순한 신체 형상을 벗어난
촉각성이나 몸의 상호 작용, 포즈, 친근감
등을 연구한다. 형태는 점점 분열하고
기괴하게 접합하며 미지의 곳으로
확장해 나가고, 몸의 상호작용인 터치-
스킨쉽으로 서로를 감각하는 사물들은
더 적극적으로 신체와 교감하게 된다. ⋯
_ 작업노트 중에서
이러한 작가의 언급은 자신의 오브제들을 단순한 창작물이나 사물이 아닌 ‘사물의 몸’ 또는 ‘신체성을 가진 사물’로 바라보는 쪽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좀 더 일반적인 시선에서 그녀의 오브제(편의상, 이후 의자로 지칭한다.)들을 바라볼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란 ‘의자’의 형태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자에서는 의자가 가진 본래의 고유한 기능성이라곤 발견할 수 없다. 단지 발과 등받이, 팔걸이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빈 의자는 사람의 부재를 상기시키지만, 그녀의 의자는 비어있지만 비어있지않은 듯 보인다. 외려, 그것은 빈 의자에 대한, 좀 더 노골적으로는 그 자리에 있을 예정이었거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애잔하고도 비루한 상실감에 대한 우리의 연상기능을 단절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의어디에서도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법한 여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상, 이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전의 작업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젊은 작가의 작업은 놀랍게도 언제나 시즌제 형식의 시리즈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혜주 작가의 이야기는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 그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쓸모없어지고 버려지는 것들을 보며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비천한 상황에 놓인 불특정 인간에
대해 떠올렸고, 일회용품으로 대변되는 버려지는 사물들을 이러한 인간군상으로 상징하고 은유하여 도예작업으로 재현하였다. 타자로 인해 배제되고, 버려지는, 그래서 존재성이 사라지는 것들을 의미하는 작업을 오랜 시간 흙가래를 쌓아 올림으로써 완성시켰던 그녀의 작업은 쓸모없어진 것들을 공들여 추모하는 일종의 ‘제祭’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대가없이 시간, 노력, 노동을 투자하여 재현하는 일은 모순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 우리의 현재에 대한 반성이자 도발, 그리고 비판으로 이어지는 유의미한 의식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시대의 가치판단에 의해 쓸모없음을 판단해 왔다. 그리고 지금의 인류가 정의하는 무가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은 자본주의가 잠식한 소비지향적인 가치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아닌 타자와 대상물의 가치를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경제적 논리와 유용성으로 판단한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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