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와 그림에 대한 두 생각
9월은 연중 가장 뜨거운 아트마켓 시즌이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와 세계적인 명성의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동시에 열려 많은 미술 애호가를 설레게 한다. 특히 때마침 한국을 찾는 해외의 아트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로 인해, 국제적인 시각에서 한국 미술이 크게 주목되는 시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의 독창적 감성을 지닌 현대미술의 비전을 다양한 시선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은 전통적 미감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 전통미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어갈 것인가 하는 점은 수많은 예술가의 숙원과제였다. 호리아트스페이스의 기획전 《도자이상圖瓷二 想》도 그 해법을 찾아보는 연장선에서 준비됐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이번 두 명의 작가는 ‘도자기’를 서로 다른 관점의 조형론으로 해석한 사례를 보여준다.
우선 강민수(1972~) 작가는 전통미 풍만한 달항아리를 특유의 현대적 감성으로 해석해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작게는 40~50cm, 크게는 60cm 이상으로 순 백의 깊이를 더해 우리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특히 강민수 작가는 20년 넘게 전통적인 장작가마를 고집하며, 달항아리가 지닌 검박한 절제미의 해석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달항아리는 해외 유명 인사나 청와대, 대한항공, 다이소 본사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사랑받고 있다.
천재 미술가 백남준이 “달은 그 옛날의 텔레비전”이라고 말했듯, 강민수의 달항아리 역시 신묘한 아름다움의 상상력으로 친근함을 더한다. 겉보기에 비슷비슷한 달항아리지만 ‘강민수 달항아리’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니듯 남다른 조형미를 자랑한다. 조선시대 전통적 제작 기법을 따르되, 현시대의 감성까지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가령 전국을 돌며 최적의 흙을 찾아낸 후 수많은 실험을 거쳐 도자기를 완성해 낸다. 평범한 도자가 그의 손을 거쳐 ‘마치 심연의 소우주를 만난 것처럼 심오한 울림을 전해준다’라는 평을 얻고 있다. 가장 단순한 조형어법인 형상과 공간, 비움과 채움, 색즉시공色卽是空이 강민수 달항아리 한 몸에 배어 있는 셈이다.
박성민(1968~) 작가는 ‘아이스캡슐 회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줄곧 ‘얼음’과 ‘식물’ 그리고 ‘도자기’ 세 가지 소재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2000년 초반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 부문 대상,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신사임당 미술대전 대상 등을 연이어 휩쓸며 미술계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깔끔한 청화백자에 담긴 얼음과 녹색 식물의 대비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투명한 얼음 속에 식물이 자라는 듯한 모습은 사뭇 극사실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가상의 비구상 설정이다.
도자기에 담겨 얼음을 뚫고 솟아오르는 식물의 강렬한 생명력은 ‘삶도 원래 그런 것’ 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번에는 도자기의 속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도자기 표면의 질감을 추상적 이미지로 옮긴 크고 작은 신작들이 대거 선보인다. 마치 한없이 펼쳐진 미지 행성의 지표면 혹은 갓 태어난 원시적 대지를 만난 듯 신비롭게 다가온다. 극사실과 추상의 기묘한 접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초창기부터 고체, 액체, 기체 등 물질의 삼태三態를 한 화면에 담아내고자 집중했다. 그림의 중심 매개체로 얼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도자기 역시 같은 속성으로 해석될 만하다. 고체인 흙이 물을 만나 액체가 되고, 다시 불을 만나 기체가 빠져나간 후 남은 게 도자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은 그 도자기의 표면을 클로즈업해 추상적 이미지로 승화시킨 것이다.
사진. 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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