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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월호 | 칼럼/학술 ]

[문화재 돋보기 ⑪] 청자 오리모양 연적
  •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등록 2022-02-03 11:10:37
  • 수정 2024-07-05 11: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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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 | SPOTLIGHT ON NATIONAL TREASURES]⑪

 

 

청자 오리모양 연적

글.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고려시대 공예품에 유행하던 물가풍경무늬蒲柳獸禽文는 서정적인 고려인들의 내면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독창적인 문양이다. 이 문양은 도자기, 금속공예, 나전공예 등의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중요한 구성요소는 물 위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오리鴨 문양이다.


「청자 오리모양연적」고려시대, 길이 13cm, 높이 9cm

 

오리는 고조선시대 청동기의 의례용 동기나 삼한시대 소도의 솟대와 부여의 철검 손잡이 끝장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오리모양의 도기도 다수 제작되었으며 남북국시대 신라의 금속공예 무늬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이 있는 오리鴨는 고대사회에는 인간과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여 신에게 인간의 염원을 전달하였으며 이후에는 금실 좋은 부부를 뜻하기도 하였다. 물속에 사는 오리는 농경사회에 풍요로운 물을 제공하며, 많은 새끼를 낳아 다산을 의미하고 ‘압鴨’자에 갑옷‘甲’자가 있어서 장원급제나 벼슬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리의 상징적 의미는 고려시대 문방 용구인 연적에도 잘 나타난다. 연적은 벼루나 채연에 일정한 양의 물을 부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기물이며 재질은 도자기, 금속기, 옥석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고려시대 청자연적은 거의 상형청자로 인물, 동물, 과실 등 다양하게 제작하였으나 현존하는 수량은 많지 않다.

「청자 오리모양연적靑磁銅畵鴨形硯滴」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청자오리연적(국보 제74호)’보다 약간 크고 통통하며 제작기법과 형태는 거의 같다. 온몸에는 투명한 비색의 청자유약을 두껍게 시유했으며 고개를 약간 쳐들고 물 위에 떠서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꼬인 수련 줄기의 연꽃봉오리를 입에 물고 등에는 자연스럽게 작은 연꽃봉오리와 연 줄기, 연잎이 놓여있다. 날개와 꼬리 깃털의 표현도 음각 선으로 섬세하고 정연하게 조각하였으며 눈매와 부리의 표현까지도 세밀화를 그리듯이 빈틈이 없다. 입에 문 연꽃봉오리가 출수구로 물이 나오도록 만들었고 등에는 연잎 받침의 입수구가 있다. 그 위에는 커다란 연꽃봉우리의 뚜껑으로 끼웠으며, 연꽃봉우리 중앙에 구멍이 있어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속에 물이 차서 뚜껑이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오리의 두 눈은 눈의 윤곽을 조각하고 산화철 안료를 눈동자로 찍어서 검게 표현하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입에 문 연꽃봉오리의 끝부분인 간엽과 등에 놓여진 작은 연꽃봉오리의 꽃잎 틈새에 산화동 안료를 사용하여 붉게 채색한 것이다. 붉은 산화동 안료를 남발하지 않고 절제된 사용으로 붉은 채색이 「청자 오리모양 연적」의 아름다움에 정점을 찍었다.
고려청자에 산화동 안료를 사용한 사례는 매우 드물며 청자연적에 산화동 안료를 사용한 사례는 더욱 희소하다. 아울러 세계 최초로 발색이 까다로운 산화동 안료를 도자기문양의 채색으로 사용한 고려인의 창조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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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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