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REVIEWS
즉흥과 우연의 리듬
이헌정의 도자, 만들지 않고 태어난
글. 이건수 미술비평가 사진제공. 박여숙 화랑
이헌정의 공간적 도예 속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특징은 자유로움, 천진난만함, 거침없음이다. 가마 사이즈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도조는 일종의 현대적 파격으로 전통적 도예의 한계를 해체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더 이상 부수적이고 수동적인 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다가오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이헌정이 숨을 불어넣은 그 몸뚱이들은 한국미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 활기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물질적인 덩어리로 초물질적인 환상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연적 같은 스툴stool은 각진 모서리가 아닌 둥근 곡선의 평화로움 으로써 자극적이지 않은 기氣를 분출한다.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내세우지만 푸근함을 잃지 않고 신경질적이지 않은 이 덩어리들은 완벽함과 장식성을 추구하지 않기에 피로감을 주지 않는다. 동심童心의 직관적인 표현과 완벽함을 넘어선 서투름의 노경이 어우러져 어느 공간에 놓여도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일체의 조작 없는 자연성Spontaneity으로 그 둥근 육면체는 우리의 생활공간 속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물레에 근거한 전통적인 도예는 절대적인 대칭과 수적인 비례를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중심점과 중심선이 허용하는 영역을 벗어나기 힘든 원심력의 산물인 것이다. 이헌정의 거의 모든 작품은 이 원심력을 왜곡시 키고 탈피한다. 하나의 흙점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물이 놓여질 공간 속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을 따라 확대 확산되어 간다. 그 흐름을 즉흥과 우연이 개입되는 자 유로운 리듬을 탄다. 청자의 고정된 표준 비색을 찾기에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티끌 하나 들어가지 않은 무흠결의 백자를 얻기 위해 안달일 필요도 없다. 전통은 지나간 하나의 법칙, 앞서간 하나의 길일뿐이다. 그러기에 이헌정의 도예는 ‘닫힌 도예’가 아 니라 그 법을 깨는 ‘열린 도예’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완벽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한 국미술의 미적 본질을 바탕에 두고 있다. 미 술사학자 고유섭이 한국미술의 특색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정제성, 무 관심성 등으로 들고 “세부가 치밀하지 않는 데서 더 큰 전체에로 포용되고 거기서 ’구수한 큰 맛‘이 생긴다.”라고 했을 때, 집약적이 지 않고 확산적인 자세와 방향을 취하고 있 는 이헌정의 도예 속에서 한국 미술의 근원 적 특질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전통적인 역사의 흐름과 풍토에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동양화나 공예와 같은 다소 위축되어 보이는 장르들에선 어떻게 하면 짙은 전통의 그늘에 매몰되지 않고 동서양의 질료적 특성을 기분 좋게 뒤섞고 트렌스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현대의 달라진 주거환경 속에서 박제된 전통의 답습은 빗나간 데코레이션의 양산만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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