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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월호 | 해외 ]

다시 만난 벨기에 도예가-피터 스톡만스
  • 편집부
  • 등록 2020-05-17 00:10:49
  • 수정 2020-08-19 03: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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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다시 만난 벨기에 도예가
피터 스톡만스
글.이윤경 독일통신원

벨기에의 도시 겡크Genk는 1900년까지 아름다운 경치 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였다. 1901 년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되며 세 개의 탄광회사가 설립되 었고, 시민의 수가 증가하며 산업도시로 거듭났다. 1987 년에 석탄 채취가 종료되고, 한 회사의 건물과 부지 전체가 C-mine(www.c-mine.be)이라 불리는 거대한 문화시설 로 탈바꿈됐다. 내부는 탄광시설을 그대로 보존하여 당시의 기계와 시설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박물관을 비롯해 시각 디자인, 게임, 사진을 공부할 수 있는 예술대학, 산업디자인 센터, 각종 행사장과 전시장, 영화관, 카페와 더불어 예 술가들의 스튜디오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석탄회사에서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C-mine
C-mine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갔던 날, 도예가 피터 스톡 만스Pieter Stockmans의 스튜디오를 그곳에서 우연히 발 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백자작업이 주를 이루고, 산업도자에 종사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도예가 스톡만스는 2001년에 벨기에의 도시 크노케 헤이스트 Knokke-Heist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원 스하르포르드 Scharpoord에서 60세를 기념하는 초청개인전을 열었다. 이 기념전은 스톡만스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필자가 본지 2001년 3월호에 기고한 바 있다. 올해 그의 나이 80 세. 도시 겡크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그는 10년 전 C-mine 내 한 건물 전체를 수리해 자신의 스튜디오로 꾸몄다. 작 품전시실, 생활용품 전시실, 작업장 그리고 거주 공간으로 마련했다. 생활용품 전시실은 현재, 스톡만스의 딸 부부가 관리하며 운영하고 있다. 약속을 잡고 다시 찾은 C-mine내의 스튜디오에서 도예가 스톡만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전시장을 둘러보며 작가 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그의 스튜디오는 상당한 규모였다. 건물 가운데 위치한 문으로 들어서면 양벽면에 설치된 스톡 만스의 작품과 바닥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를 상징하는 코발트 블루의 백자타일과 한쪽 벽면에 작가의 사진과 소 개글, 얇은 백자판으로 만든 명함 여러개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생활자기 전시실을 둘러보기로 한다. 입구에서 볼 때 양쪽으로 나눠진 두 전시실 중 왼쪽의 전시실에 들어서면, 벽면에 가로로 길게 작가의 활동이력과 작품사진이 연도 별로 정리된 인포그래픽이 눈에 들어온다. 1963년 대학졸 업을 시작으로 산업도자회사 디자이너, 대학교수의 경력 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 활동과 새로운 출발점 등이 소개되어 있다.

내가 만드는 그릇에는 숨겨진 형태가 있다.
그릇 위에 음식이 올려지는 순간 완전한 조화가 이뤄진다. 말하자면 나는 항상 그릇의 반만 생산하고 있다.
요리사는 나의 그릇이 완벽한 그릇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_ 피터 스톡만스, 2009

 


전시실 전체에는 스톡만스가 직접 디자인한 식기, 다기, 화병, 등잔 등 다양한 생활용기들이 세팅된 식탁이 긴 동선을 따라 잘 배치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하얀색과 푸른색이 조화로운 용기들을 바라보며 작가가 의도하는 용도가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식기세트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떻게 음식을 담을지 상상하게 하는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릇을 만든 이와 사용하는 이의 의도가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는 그의 설명이 공감된다.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스톡만스는 오랫동안 산업도자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 동하였기에 그가 만든 식기세트들은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기에 그가 디자인한 식기가 상품으로 나올 당시에는 고급식당이나 부유층의 개인들이 주를 이루며 사용자의 범위가 작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식당들에서도 자신들만의 용도와 개성에 맞춘 디자인을 원하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1980, 90년대에는 음식문화에서 식재료에 관심이 집중 되어 있었다. 각 나라별로 자신들만의 특별한 식재료를 사 용해 어떤 음식을 개발하는가에 관심도가 높았다. 시간이 흐르고, 특수한 식재료가 보편화되며 그릇의 형태로 관심도가 자연스레 옮겨지게 되었다. 이 관심도는 산업도자 회사에서 생산하는 그릇으로 시작되었다가 현재는 디자이너가 제작한 그릇으로 개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도자기가 일반화되었다는 의미일 수 있고, 디자이너가 만든 그릇의 개성과 장점들이 식생활에서 점점 더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몇해 전, 모나코왕의 결혼식에 그의 식기가 사용되며 스톡만스의 이름은 유럽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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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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