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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월호 | 해외 ]

멕시코와 흙 ①_미초아칸 주의 도자기 마을
  • 편집부
  • 등록 2019-07-08 23:33:26
  • 수정 2019-07-11 13: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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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흙 ①


조금씩 변하며 지켜가는 흙
미초아칸 주의 도자기 마을

 

멕시코의 도자기를 만나는 여행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지도 위에 점을 찍어가는 여정이었다. 수많은 유명 여행지로 설정된 좌표를 싹 비워내고 그 위에 새로운 점들을 찾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우연과 행운, 인연들이 엮여 만들어낸 길이었다. 모든 일이, 이야기가 그렇듯 첫 걸음, 첫 말은 조금 더 설레이고 특별하다. ‘멕시코와 흙’이라 이름 붙여진 이 특별한 설레임의 시작은 멕시코 중부의 미초아칸 주에서 시작한다.

 

흙으로 만든 화려한 해골마을, 까뿔라Capula
미초아칸 주의 주도인 모렐리아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 ‘까뿔라’를 찾은 이유는 멕시코 전통 축제인 ‘죽은 자의 날(Dia de muertos)’의 상징하는 ‘라 까뜨리나(La catrina(이하 까뜨리나))’때문이었다.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의 마을로 불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도예마을이다.

까뜨리나 캐릭터는 1910년 ‘콩을 파는 해골여자’라는 이름으로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라는 작가에 의해 처음 등장시켰다. 프랑스 귀족의 모자를 쓴 해골 얼굴로 인디오임에도 스스로 유럽인척 허영을 떠는 것을 비판하는 캐릭터였다. 이후 모자에 의상까지 갖춰 입은 완성된 까뜨리나는 1947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주말 오후 알라메다 공원에서의 꿈’에 등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멕시코의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 ‘죽은 자의 날’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초입에 거대한 까뜨리나가 서있고, 작은 골목의 공방마다 형형색색 다른 옷과 모습을 하고 있는 까뜨리나들이 반갑게 방문객을 맞이하며 이곳이 ‘까뜨리나의 마을’임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까뜨리나는 흙으로 만들어 가마에서 한번 구워내고, 아크릴로 화려하게 채색한 뒤 마무리하는 작업으로, 공방마다 가마에서 나온 까뜨리나에 채색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공방을 둘러보던 필자에게 한 도예가가 까뜨리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소개해 주겠다며 가게 뒤쪽에 있는 그의 작업공간으로 초대했다. 다양한 크기의 석고틀을 이용해 기본 몸체와 얼굴을 만들고, 옷과 모자 등 세세한 장식은 도예가들 각자의 상상으로 빚어 완성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비슷한 해골형상인 듯 보이지만 의상이며 색깔, 크기 등 제각각의 스타일을 담고 있다.
“원래 부모님을 따라 전통적으로 만들어 오던 식기류를 제작했어요. 까뜨리나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6년 정도 되었죠. 까뜨리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흙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그처럼 이 마을의 도예가들이 까뜨리나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전통 도예마을이었던 까뿔라가 어떻게 ‘까뜨리나의 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그 답에는 30년 전 흙으로 까뜨리나를 만든 예술가 후안 또레스(Juan Torres)라는 이름이 있었다. 회화, 조각, 조형 등 다분야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는 그의 개인 작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거처를 까뿔라로 옮기면서 마을의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후안 또레스는 회상하며 말했다. “전통적인 식기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었죠.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까뜨리나 제작법을 가르쳐주었죠. 처음에는 내 작업을 쉽게 수용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돈을 지불하며 가르쳐야했으니까요.”
처음 그에게 까뜨리나를 배우러 온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흙으로 만든 까뜨리나가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고 그 제작법은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전해졌다. 지금은 이 작은 마을에 200여개의 공방이 까뜨리나를 만들고 있고 2012년 부터 매년 까뜨리나 축제도 열리고 있다.
“마을 도예가들이 자체적으로 까뜨리나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까뜨리나를 만들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진행한 공공프로젝트’ 라 할 수 있죠.”
사십대의 패기 넘친 한 예술가의 작업 공유는 한 마을의 이름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를 계속 만들어 내길 바라고 있다.

 

 

----------이하 생략 

 

글·사진_ 홍 은 자유기고가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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