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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월호 | 해외 ]

영국 도자기 공장, 박물관 시리즈⑨
  • 편집부
  • 등록 2018-02-10 01: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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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열 덜튼 + 피겨린Royal Doulton and Figurines

로열 덜튼 옛 공장의 문, 스톡온트렌트

 

 

 

신데렐라, 백설공주같이 디즈니 만화에 치마폭이 풍만한 공주 드레스를입은 아름다운 여인들, 화려한 색깔로 장식된 구두…. 미국에 바비 인형이 있다면 한 세기 전 영국인들은 로열 덜튼Royal Doulton공장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에 열광했습니다. 흔히 피겨린Figurine이라고 불리는 도자기 인형입니다.1) 이번 본지에서는 영국 로열 덜튼의 컬렉터블 피겨린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유럽의 피겨린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합니다.

 

로열 덜튼의 시작
로열 덜튼Royal Doulton도자기 공장의 스토리는 올해로부터 200년 전인 18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런던 풀햄 공장Fulham Manufacturing Co.에서 도공으로 일하고 있던 존 덜튼John Doulton은 불과 22살의나이에도자기 무역을 배운 후 자신이 모은 전 재산 100파운드를 가지고 작은 도자기 회사를 차렸습니다.2) 그이후 마사 존스Martha Jones와 존 와츠John Watts 두 파트너들과 함께 런던을 가로 지르는 템즈강 둑 주변에와츠 앤 덜튼 포터리Watt & Doulton pottery를 처음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시 영국에 유행하던 스톤웨어병, 쨈 병 등을 만들었는데 20세기 초반, 핸리 덜튼Henry Doulton이 입사하고 난 후부터 비로소 회사가 많은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로열 덜튼의 위생 도자기들, 워터 필터등 세계 최초로 소금유약 스톤웨어 파이프를 생산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 외교에 사용되었던 피겨린
로열 덜튼의 피겨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유럽 피겨린의 발생과 사용되었던 예에 대해서 잠시 되짚어 보려합니다. 피겨린은 원래 왕실의 테이블 세팅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3) 원래는 설탕이나 왁스를 이용해 제작한 인형들을 만찬에 사용했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자기의 발명과 함께 독일 마이센에서 포셀린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테이블 세팅 속 피겨린의 주제는 주로 정치적인 충성을보여주기 위한 것들이었고 이러한 목적으로 선물로 주고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1713~14년 작센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친척인 조피Sophia of the Palatinate, Sophia of Hanover 1630–1714에게 포셀린을 선물 한 예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자기가 단순한 선물이 아닌유럽 왕실 외교를 위해 처음으로 사용됐다는 점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폴란드 왕좌를 얻기 위해서는 카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와 정치적 압력에 시달렸습니다.조피가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가톨릭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지배층 가족 출신이었기에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도자기를 선물한 것입니다. 강건왕 자신이 열정적인 포셀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기 때문에 도자기의 강력한후원자였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로의 선물은 확실히 그 효과가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조피는 영국 왕 조지 1세의 어머니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명성이 높아진 마이센의 피겨린은 정치적 외교로 많이 사용됐습니다.4)

영국인들이 수집하는 피겨린
피겨린의 기원이 독일에서 왔기 때문에 실제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피겨린이 18세기 마이센 포셀린 피겨린을 모방했던 사례가있습니다. 한 예로 지금까지 영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받는 퍼그 독pug dog피겨린은 사실 독일 마이센Meissen공장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의 가장 사랑하는 애완견이 퍼그 독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 영국에서 퍼그독 피겨린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서 여전히 다양한 디자인의 퍼그 독 피겨린을 볼 수 있습니다.포셀린 생산과 기술에 한 발짝 뒤처져 있던 영국은 경질자기hardpasteporcelain피겨린뿐만 아니라 그릇도 독일 드레스덴 지방에서 수입해 그 모습을 모방해 만들었습니다. 그 증거로 1751년 첼시 포셀린 공장Chelsea Porcelain Factory의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스피리몬트Nicholas Sprimont의 후원자 에버라드 경Sir. Everard Fawkener은 독일 드레스덴왕궁의 영국 특사에게 마이센 공장의 포셀린 작품과 가격을 요청하는 특별요청 편지를 쓰기도 하였습니다.5)
19세기에는 상류층을 위한 백자의 도자기 피겨린이 계속 유행했던속에서도 영국 서민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도기 흙Earthenware으로 만든(스태포드셔 피겨Staffordshire Figure로 불리는) 도자기 인형들이 발달하였습니다. 사진과 같은 로우테크low-tec로 만들어진 퍼그독 도자기 피겨린을 보면 마이센의 퍼그 독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섬세하지는 않지만, 영국 서민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는 피겨린입니다. 퍼그 독뿐만 아니라 많은 영국 도자기 피겨린은 그 시대의 시각적인 일상의 역사 기록물이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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