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지에 소개된 영국 도자 디자이너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마지막 순서로 영국 산업 도자 공장 디자이너의 삶과 그들의 일은 어떤지 간단하게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독립 디자이너,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달리 기업만이 가지는 도자 디자인의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했다. 필자 또한 예전에 웨지우드에서 프리랜서로 짧게 일한적도 있고, 인턴 생활을 경험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업에 소속돼 일을 한 적은 아직 없기 때문에 소속 디자이너의 삶을 다 겪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자연히 이번 인터뷰에 거는 기대가 컸다.
웨지우드의 새로운 디자인
영국 도자기 그릇 뒤쪽에 보면 백 스탬프Back Stamp라고 하는 공장 로고와 함께 간혹 무엇인가 살짝 묻은 듯한 표식이 있다. 이는 바로 페인터와 길더의 고유 표시다. 붓으로 아주 조그맣게 표시된 이것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누가 도자기를 장식하다가 실수로 묻힌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꼭 손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도자 제품들이 있다. 전사지로 장식한 것들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핸드페인팅으로 색을 넣는 제품들이다. 러스터 길딩Gilding은 전문 길더Gilder가 따로 있다. 수금, 백금, 동, 오팔 등 러스터를 이용해서 작품을 장식하는 것을 ‘길딩’이라 하고 이것을 전문적으로 칠하는 장인을 ‘길더’라고 한다. 페인터painter나 길더 모두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대해서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표식을 남긴다.
길더나 페인터는 이미 확정된 디자인을 가지고 도안에 따라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작품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존재한다. 독일 님펜부르크 포셀린 공장Porzellan Manufaktur Nymphenburg과 네덜란드 디자이너 헬라 용에리위스Hella Jongerius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중에 「님펜부르크 플라워 앤 게임Flower and Game」이란 작품이 있다. 디자이너가 공장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새 작품을 그곳에서 일하는 페인터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고 색상과 칠하는 방법 등을 자유에 맡겨 다양한 결과를 얻어낸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도자 공장의 독특한 생산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즉 디자인 프로세스를 강조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산업 브랜드의 도자 디자이너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패턴pattern 디자인, 쉐입shape 디자인, 디자인 디렉터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웨지우드 박물관에 가보면 역사적으로 도자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했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찾은 영국 아일랜드 리빙 그룹 WWRD. Ltd.(웨지우드·워터포드·로얄덜튼·로얄알버트·로가스카)에서는 웨지우드 에스테이트Wedgwood Estate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웨지우드 에스테이트는 웨지우드 공장, 박물관, 다이닝 홀, 쇼핑센터 등이 위치한 일대 지역을 총칭하는 것으로 현재 웨지우드는 ‘World of Wedgwood’라는 이름으로 방문객들에게 도자기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센터를 짓기 위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www.worldofwedgwood.com 참고) 박물관에서는 역사 속 디자이너들의 자취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패턴 북, 드로잉 북, 형태 디자인 스케치북, 실험 모델, 양산 모델, 몰드 등 디자인 프로세스가 관여되지 않은 곳이 없다.
예전엔 웨지우드 같은 큰 공장에서는 전문 디자이너들과 도자기 장인들을 기르기 위한 전문학교를 운영했었다. ‘웨지우드 인스티튜드 빌딩’은 스톡-온-트렌트Stoke-on-Trent 지방 버르살람Burslem에 위치한 건물로, 예전의 웨지우드 도자기 장인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했던 학교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탓에 1972년에 위험한 건물로 지정되어 지금은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고, 2012년부터 건물 복구를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몇 해 전에 영국 비엔날레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어 운 좋게 이곳을 역사학자와 함께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학교가 운영되던 당시 도자 디자인 관련 강의가 이루어지던 강의실, 페인팅실 등 근대 도자 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사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학교에서 길러내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러한 기능을 전문 대학교가 대신해 주고 있다. 특별히 스톡-온-트렌트에는 도자 공장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스태포드셔 대학교Staffordshire University가 있고 관련 학사와 석사 과정이 개설되어있다. 이곳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웨지우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최성아 디자이너를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대학교 학부 과정에서부터 산업도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는데, 유학을 꿈꾸던 중 이곳 대학교 커리큘럼을 보고 확신이 들어 영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