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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월호 | 칼럼/학술 ]

[소소담화37] 세밑, 다시 상기하는 ‘흙의 시간’
  • 홍지수 공예평론, 미술학박사, 크래프트믹스 대표
  • 등록 2025-02-03 12:02:50
  • 수정 2025-02-05 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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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 현장에서, 부쩍 ‘시간’을 작업 주제로 논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부쩍 시간을 작업의 주제로 논한다. 동서고금 도자예술의 주제로 시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9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 동안, 도예가들이 작업실이나 집에서 홀로 격리되어 답답하게 보낸 시간이 많았다. 원래 작업은 홀로 재료와 독대하는 시간이나 반강제적인 단절의 시간이 무척 고요하고 적막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물질을 주무르고 작업하는 시간 그리고 자신의 생애에 대해 깊이 반추하고 체감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 경험이 근래 젊은 작가들 위주로 시간이 도자예술의 주제로 급부상하는 이유인가 원인을 유추해 본다.


물질을 만지고 작업하는 ‘일’의 시간은 기실 도예가만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작업으로 보내도 만지고 체감하여 얻은 바는 매체별로, 작가별로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도예가들이 흙을 만지고 느낀 ‘시간’ 혹은 흙을 통해 가시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매체 불문 모든 작가에게 재료는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통로다. 도예가에게 흙은 곧 세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도구다. 도예가는 의도하지 않아도 매일 흙을 만지고 구우며 몸에 밴 감각과 습으로 세상을 보고 응대한다. 재료를 만지고 대하는 감각과 태도가 다른 물건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옮겨간다. 흙이 곧 제 눈에 안경이다. 흙을 선택한 것은 곧 흙의 언어로 세상을 살고 보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따라 흙을 감각의 경로이자 격물치지의 도구로 삼는 도예가들이 이해하고 체감하며 표현하고자 하는 시간 역시 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흙이 도대체 무엇인가? 흙을 뜻하는 한자 ‘土’는 자연에서 본뜬 상형문자다. 세로 기둥에서 위로 솟은 것은 식물이요, 아래는 뿌리를 뜻한다. 위의 가로 막대는 지표면을, 아래의 가로 막대는 암반을 의미한다. 결국 ‘土’는 식물과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을 보이는 그대로 그린 것과 다름없다. 흙을 토양이라고 부르면 ‘암석이 풍화된 것에 식물 시체가 섞인 상태’를 지칭한다. 어느 날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 생물이 다시금 새로운 생물을 키우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성이 ‘토양’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있다. 따라서 토양에서 ‘토 ’는 흙이지만 ‘양 ’에는 생물이 생장土壤하기 좋은 비옥한 상태라는 양태 조건이 붙는다. 

흙이 토양이 되려면 수백 년에서 수백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긴 시간이 걸린다. 수백 년 된 흙은 수천 년, 수만 년 된 흙에 비하면 애송이 수준이다.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 정도는 되어야 어른 즉, 무르익은 흙이 된다. 흙의 시간은 그야말로 인간이 헤아리기에는 아득한 시간이다. 


흙의 시간을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언급해 보자면, 지구 는 약 46억 년 전에 태어났다. 그러면 지구 최초의 시간부터 흙이 존재했을까? 흙이 생성되려면 생물이 있어야 한다. 바닷속 생물이 육지로 올라가 살다가 죽고 거듭 쌓여야 흙이 탄생한다. 이를 유추해 보면 흙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겨우 5억 년 전이다. 무려 41억 년 동안 대지에는 육상 동식물이 없었다. 5억 년도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약 46억 년에 달하는 지구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비루하다. 5억 년이든 46억 년이든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으로선 도통 헤아리기 쉽지 않은 시간인건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지금을 인류세라고 하나, 인류세 이전에는 공룡이 세상을 지배했다. 메마르고 황량했던 땅이 토양이 되어 식물이 그 위에서 생장한 시간,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살기 시작한 시간은 지구의 시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미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인류세를 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세로 동식물을 군림하며 산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CO2)를 발 생시키고, 죽으면 미생물이나 동물에 먹힌다. 대부분 대기로 돌아가나 그중 남은 것들은 부식되어 토양이 된다. 낙엽이 쌓이고 부식되면 점토와 서로 섞이는데, 이것이 쌓여 대지를 형성한다. 토양의 생성에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큰 역할을 한다. 지렁이가 없다면 땅은 어떻게 될까? 지렁이는 낙엽과 점토를 먹는다. 장내에서 잘 섞어 알갱이 모양의 똥-단림을 배출한다. 매일 꿈틀꿈틀 흙을 일구고 아래위로 뒤섞는 미물 지렁이야말로 부드러운 토양 즉, 건강한 생태계 생장의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존재이다. 이처럼 흙이 암석의 풍화뿐 아니라 동식물의 생사 순환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은 유한한 우리가 흙, 생물, 지구, 우주를 아우르는 영겁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1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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