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접시 12.5x5.5cm
지리산이라고, ‘잠깐 들러도 될까?’ 한다. ‘그럼요!’ 그렇게 맞이하게 되었다. 역시나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사진을 찍는다. 일행들도 그렇게 찍는다. 『사진으로 생각하기』 최광호 작가다. 최광호 선생은 질접시를 좋아한다. 당신이 생명력을 바탕으로 하여 작업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술잔 필름’은 당신으로부터 빚어진 그릇이다.
1994년, 다시 징광옹기점(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전시(박나섭·이현배 《징광옹기전》) 준비였지만 학습 (1991~1992)이 부족했기에 복습이 컸다. 아내와 애들은 손내옹기점(전북 진안군 백운면)에 두고 앞 일꾼 한 사람을 데리고 일을 갔던 것이다. 차를 대여섯 번 갈아타야 했기에 두 달에 한 번쯤 손내를 다녀가게 되었다. 그럴 때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된 곳이 임실 이었다. 도시는 버스가 자주 있었지만 임실에서 면 단위로, 면 단 위에서 마을 단위로 들어오자면 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 임실 읍내를 배회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다 바닥이 좁은 항아리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
옹기장이로 장독을 유지하고자 하면서 아파트 장독대를 중심으로 두고 일을 꾸렸다, 그런데 1997년 IMF 국제 금융위기로 인하여 장독대 문화도 위기가 왔다. 그 오랫동안 가족 단위로 유지해 왔던 식생활 문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장독대를 재해석해야 했고 우선 장독의 뚜껑으로 쓰다가 큰일을 치를 때 벗겨서 사용하던 행위를 담아 양식기를 구성하였다. 그 구성에서 아이스크림 볼로 임실 읍내에서 봤던 바닥이 좁은 항아리 뚜껑에서 발상한 것이 질접시다.
옹기장이들은 그릇을 지을 수 있는 흙을 따로 ‘질’이라 한다. 사전은 옹기를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정의한다. 그러니까 흙의 또 다른 우리말 ‘질’을 생명력으로 표현하고자 원초적 생식능력으로 여성의 생명력을 담고자 하였다. 장독의 전(입술)이 이미 남성의 생식능력을 담고 있으니 암수, 음양의 조화로 완결성을 높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1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