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 ~11. 30. P21(피투원)
생의 한가운데
나는 작가라는 존재들에게 신비에 가까운 경의와 무한한 감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던 나를 그 한가운데에 있는 누군가가 불러줘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예술의 세계는 내게 언제나 신비로운 것이었고, 내면에서 발화한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자기 안에만 남기지 않고, 나 같은, 혼자서는 결코 그런 세계를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농후한 타인을 이끌어 내밀한 세계와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가들의 다정함은 늘 놀랍다. 자신만의 세계를 타인에게 공개하고 초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가? 나는 그런 것들이, 작가라는 이들이 보편적 존재들을 대하는 이타적 아름다움 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김명주는 특별하다. 김명주는 한국을 넘어 유럽 등지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예술가로 세라믹 장르에서 특히 그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는 아니다. 내게 김명주가 더욱 특별한 작가인 이유는, 김명주는 진실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내가, 김명주의 작업 앞에서 어쩐지 두 손을 모았던 것은 내 개인에게 강렬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내가 마주했던 것은 신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진실된 생生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생生을 찬미하는 예술
김명주가 선보이는 얼굴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성찰적 장면들로, 작가의 내면과 개인적 경험들을 반영 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최신작과 근작들은 조금씩 방법을 달리하여 전개되면서도, 생生을 강렬하게 찬미하는 에너지를 발산 한다. 김명주가 생을 찬미하는 방식은 선과 악, 미와 추 같이 흔히들 이분법적으로 떠올리는 감각들로 전진하지 않는다. 빛이 들지 않는 곳의 밝음, 벗겨진 표피 안 핏기 어린 살결의 아름다움, 저물어 가는 시간의 경이로움, 숨겨진 부분들을 강조하면서 탄생하는 낯섦, 찰나로 박제된 역사, 이 모든 것들이 김명주의 생의 조각들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죽음으로써 찬미하는 생, 무한이 갈망하는 유한 같은 김명주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다면성과 생의 복합성을 엿 볼 수 있다.
김명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두상, 그중 에서도 침묵함으로써 한층 더 강렬한 「생각에 잠긴 두상 Tête pensive」 연작은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어떤 갑옷과 치장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게 한다.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 않은 채로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시선이 보내는 신비로움 속 강렬한 여운, 어지러운 피 같은 분홍이 상징하는 탄생의 증거, 흘러내리는 유약이 함축한 유한한 생의 상징은 ‘어째서 삶이란 시작부터 사라져 가고, 빛이란 다가가는 순간 멀어지는 것일 까?’와 같은 사유의 지점에 이르게 한다.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불안, 고통, 언어로 설명 되지 않는 응고된 질문을 마주하게 하는 김명주의 두상들은 신기루 같은 생의 덧없음을 피하지 않고 목도한다. 동시에 그 덧없음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찬미하게 만든다.
자연과의 관계
김명주의 작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다. 김명주가 창조한 눈을 가진 식물들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내밀한 곳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힘이자 존재하는 순간부터 저물어가는 탄생의 목적을 상기한다. 이슬이 맺힌 초목의 잎사귀는 생명의 연속성과 덧없음을 동시에 포착하며 마치 영원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유약의 형상들과 만난다. 김명주의 조각들에서, 흘러내린 유약들은 곧 생명의 흐름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감정의 깊이이자, 시간을 멈춘 순간을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명주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연의 섬세함과 동시에 생명의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꽃 팬지의 이름은 프랑스어 pensée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생각’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얼굴을 닮은 작은 꽃. 이처럼 김명주의 작품 속 식물들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다.
그들은 내면에서 피어나는 생명과 사유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식물에 눈을 부여한 김명주의 상상력은 자연이 인간에게 있어 외부 세계나 배경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생명과 죽음, 시간과 영원을 고찰하는 상호적 존재임을 드러낸다.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김명주의 작업은 상반된 요소들의 긴장감 속에서 특히 그 미학적 힘을 발휘 하는데 「리벨리프 Libelleaf」 시리즈가 더욱 그러하다. 잠자리Libellule와 잎Leaf을 결합한 조어로 이름 지어진 이 작품들은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자연의 생명력과 자유로움, 날개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에 식물과 인간의 요소를 동화처럼 접목 시킨 이 작품들은 십자가로도, 천사로도 때로는 새로운 원시적 생명체로도 보인다. 자연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삶과 죽음이 맞닿은 경계를 은유적으로 탐구하는 무언극의 주인공 같은 ‘리벨리프’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초월적 생명체의 현상을 구현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김명주는 초인적이자 보편적인 존재의 자유로운 형태를 구현하며, 우리는 이 초월적 생명체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뿐만이 아닌, 스스로 한계 지어둔 세계의 숱한 경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김명주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는, 그러나 채 인지하지 않고 스쳐 보내는 무한한 생명의 다양한 에너지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생의 얼굴들은 작가의 가족들 이기도 하고, 식물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그 얼굴들은 산 자인가, 망자인가, 유한한 자인가, 무한한 자인가? 김명주의 얼굴들은 대답 대신 침묵 속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그 시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삶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 P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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