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권력과 위세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이었던 장신구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다양한 재료와 기술, 개념을 실천하는 예술 형식으로 진화했다. 이는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을 넘어 장신구가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사회적 아트 오브제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 및 기술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형성된 장신구. ‘현대장신구’에서 도자가 가진 매체 특수성은 어떠한 가능성과 실험성을 보여주고 있을까?
장식 너머 발언 ● 2024년 5월 28일부터 7월 28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이 개최되었다. 총 111작가(팀), 675점이 출품되어 ‘현대장신구’를 단일 주제로 한 전시 중 단연 최대 규모의 전시였다.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장식과 환영》(2013)을 비롯하여 《100개의 브로치》(2020) 등이 있었지만, 현대장신구의 선구자인 엘리자베트 제이.구.데프너Elisabeth J.Gu.Defner, 페터 스쿠비크Peter Skubic와 같은 작가들을 배출한 오스트리아와 함께 현대장신구 1세대 작가들부터 동시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양국 현대장신구의 특징을 반추하고, 동시대를 경유하고 있는 현대장신구 작가들의 공감대와 작품 경향을 살필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한편, 이번 기고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되짚은 것은, 《장식 너머 발언》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매체에 관한 부분이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 해설을 진행할 때면 강조했던 “현대장신구=매체·형식 실험”의 도식이, 정작 매체의 자리에 도자를 대입하는 순간, 명확한 결과값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설정된 매체 편향의 문제일까, ‘도자’라는 특정 매체를 강조해야만 하는 입력값의 오류일까? 신체를 매개로 완성되는 장신구의 조건 아래 도자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실험 가능성은 과연 무엇일까. ‘현대도자장신구’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도자장신구의 유구한 역사를 되짚는 대신 장신구에서 ‘현대’가 가지는 의미와 ‘도자’를 매체로 한 실험적 작품들을 되짚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2010년대 현대도자장신구 전시에 있어 가장 돋보이는 전시 중 하나인 《A Bit of Clay on the Skin》의 주요 참여작가의 작품과 《장식 너머 발언》 참여작가의 작품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지만, 현대장신구라는 장르 안에서 특징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도자뿐 아니라 오늘날 현대장신구 작가로서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의 주요한 요소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경계를 재설정하기
권력과 위세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으로 인식되던 장신구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재료와 기술, 개념을 실험하는 예술 형식으로 진화하며 장식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을 내재된 사회적 아트 오브제로 자리 잡았다. 아트 주얼리art jewelry, 스튜디오 주얼리studio jewelry, 착용 가능한 예술wearable art과 같은 용어들은 현대장신구가 가진 입체적인 의미와 역할을 방증한다. 금, 은과 같은 기존 귀금속류에서 벗어나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재활용품 등 기존에는 사용되지 않던 다양한 재료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장신구’의 본질, 의미에 대해 반문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장식 너머 발언 ● 페터 스쿠비크Peter Skubic는 「피부 밑 장신구 Schmuck unter der Haut」라는 제목으로 팔에 작은 금속판을 심어 장신구와 능동적인 관계를 만드는 실험을 보여주었다.1) 해당 작품은 수술용 스테인리스 스틸 임플란트를 자신의 피부 아래 삽입한 후 이를 7년 동안 유지한 뒤 다시 반지로 만드는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프로세스 아트였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피부 위에 존재하는 장신구의 착용 위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였을 뿐 아니라, 과연 어디까지가 장신구이고 장신구가 아니게 되는 것일지에 대한 경계를 반문했다.
페터 스쿠비크Peter Skubic 「Jewellery under the Skin」 steel implant | 1975
A Bit of Clay on the Skin ● “하나의 물체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예상치 못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게신 해켄베르크Gésine Hackenberg는 그릇, 접시를 활용한 현대도자장신구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기존의 도자 기물을 원형으로 오려내어 만든 목걸이, 반지, 귀걸이는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작품 이면에는 기존 사물의 기능이나 의미 맥락을 전복시키는 과감함이 자리하고 있다. ‘실용성(착용성)’을 염두에 둔 도자(기)의 경우 장신구에는 적합하지 않은 매체로 여겨지거나, 값비싼 보석류를 대신해 부분 사용되는데 그쳐 왔다. 하지만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되는 식기류를 다소 거칠다 느껴질 만큼 과감히 도려냄으로써 도자가 가진 기능과 장식성에 관한 경계를 흔들고 있다. 또한 현대장신구를 탐구한다는 것은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사물과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통적(고정된) 형식과 매체를 어떻게 현재와 연결지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두 작가는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와 접근 방식이 상이하게 나뉘지만, 장신구를 둘러싼 혹은 장신구를 통해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경계에 대해 각자의 고유한 언어로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신 해켄베르크Gésine Hackenberg 「Delft Blue ‘Plooischotel’ Necklace」
Ø35x6, 4cm | 2015
#2.
역사와 문화를 (재)참조하기
장식 너머 발언 ● 강미나는 한국의 전통 섬유인 모시를 활용해 입체적 장신구를 만든다. 다양한 색채와 면 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의 장신구는 다양한 섬유 자투리를 이어 만들던 전통 조각보에 비유되기도 한다. 전통 공예를 즐기던 어머니의 소품바구니에서 발견된 모시 자투리가 작업의 영감이 되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행위를 통해 안정과 위로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단단한 물성과 반짝임, 과감한 형태가 주를 이루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오로지 모시 특유의 뻣뻣함과 탄력,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수공예 행위 중 하나인 바느질로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유기적 형태의 아름다움과 완결성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섬유와 여성 노동에 대한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판금이나 주조, 타출, 투각, 상감 등 정교한 기법들이 사용되는 장신구 제작에 있어, 가장 소수의 위치라 할 수 있는 바느질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성의 덕목으로서 강조되어 왔던 수공예 노동이 최근 여성의 경험과 역사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재해석 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강미나의 작품은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강미나 「고풍 연작 Classic Series」 6×29×35cm | 모시, 실, 정은 Ramie fabric, thread, stering silver | 2018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9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