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동희는 성경 계시록에 등장하는 7개의 선물을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는 실체의 형상으로 출현시킨다. 메시아와 낙원에 대한 동경을 담아내지만 결코 기독교적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통고하지 않는다. 동시대 예술 안에서 순수한 감상 대상으로 작동하고, 개인 영역에서 형성된 점토 덩어리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 절대 선을 향한 신념은 체계를 갖추며 삶 전반과 긴밀하게 관계해 왔다. 경건한 신앙심에 기대어 절대자의 계시를 따라가다 보면, 논리와 객관만으로 맥락을 잡을 수 없는 영역에 가닿게 된다. 형상이 없는 에덴의 진리를 예술로 번역하는 행위는 추상적 기록을 공통 감각으로 확장시킨다.
「생명의 면류관 (계시록2)」 (h)60cm | 도기 | 2023
한 꺼풀씩 일어난 특이성
작가의 현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의 지난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75년 풀브라이트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캔자스대학교에 입학했다. 작품의 독창성을 강조한 지도교수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교내 실습실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에게 붙여진 ‘클레이 믹서Clay Mixer’라는 별명도 치열했던 몰입의 시간을 방증한다. 가족 중 종교인이 아무도 없었던 그가 기독교 신도가 된 것은 학창시절 가까웠던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닐 때부터이다. 메시아의 무조건적 자비와 영생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한다. 독자적인 작품에 대한 갈망은 두터운 신앙심과 맞물려, 흙을 상대하는 그의 손짓을 더욱 과감하게 이끌었다. 와이어로 큰 점토 덩어리를 잘라 유닛을 붙이는 특유의 슬라이싱 기법도 이 시기부터 착안된 것이다. 철삿줄로 점토를 수직으로 나눠 각 층을 임의롭게 벌리고, 구부리는 과정을 거쳐 부드럽게 처진 형상을 완성시킨다. 그렇게 침례교 학생회관에서 열었던 졸업전시부터 캔자스의 공예전까지 출품했던 작품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그는 성경의 보좌를 완성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새벽 별(계시록2)」 (h)36cm | 도기 | 2023
《서동희 도예전》
작가의 이번 전시는 보좌에 대한 환상을 연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따르면 보좌 앞에는 7개의 등불이 켜져 있었고, 작가는 영성을 환하게 밝히는 7개의 선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십자가와 예수상 등의 신앙적 표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성경 속 장면을 온전히 재현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재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조각으로 에덴을 암시하는 것을 선택했다. 흙을 꼬집고, 잘라내며 생명의 면류관과, 생명의 책과, 생명의 나무를 기억하고자 한다. 주요 작품인 「생명의 면류관」 역시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착안한 것이다. 유연하게 뻗어오르는 발산형 구조의 형상과 그 표면에는 톱밥을 혼합하여 요철의 질감을 획득했다. 3단 유닛의 각 개체는 2005년부터 점차 제작된 것들인데 치열한 감내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면류관의 영화로움을 상징했다. 또한 새벽별을 형상화한 청백색 백자를 도기 위에 얹어, 새벽 여명에 빛나는 별빛을 연상케 했다. 그가 표현한 성경은 책장이 유연하게 휘날리는 모습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명력을 담아낸 것이다. 전시는 영성과 예술이 관계되는 과정을 담지하며, 각자의 신념을 위한 빈 공간을 열어 두었다.
「생명의 나무 (계시록2)」 (h)71cm | 도기 | 2023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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