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종일 도예가
도자기는 점토를 소지로 바꾸는 물리적 변화와 자연에서 추출한 광물질을 불과의 조화로운 화학적 반응을 통하여 물리적으로 자기라는 새로운 물질로 변환시키는 과학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학문이다. 또한 도자예술은 작가의 시대적 인식과 상상력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가시적인 미래의 이상향을 제시해야 한다.
숭고한 사상은 인류를 위한 아름다운 장식으로 인도하였으며 장엄한 상상력은 고매한 문양으로 우리의 주위를 장악하였다. 한반도의 자기들은 제 나름의 의미를 담아 이상향으로 안내한다. 문양이 그려진 자리는 사상의 공간이며 비어 있는 공간은 상상력의 몫이다. 한반도의 자기는 하나의 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담아낸 철학적 사유물인 것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삶은 물론 시대의 문화적 배경이 내포되어 있는 문자향까지 읽어내는 감상자를 만났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현대예술은 너무 많은 축약으로 추상성마저 일종의 예술적 가치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이 현대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외면당하기 쉬운 상황에 처했다. 과거 문화에서 대부분 애호가들은 오언 혹은 칠언 절구만 대어도 그 댓귀를 읊을 만큼 기본적 소양을 갖추었고, 당호나 예명만 나누어도 인물의 인품과 삶의 기준을 가늠했다. 그러나 현대의 애호가들은 삶이 아닌 교육 속에서 배우고 느낀 예술적 소양에서 비롯된 가치를 현실에서 찾아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필자도 현대도예를 이해하기가 난감할 때가 있다. 현대도예는 탈이념에서 탈조형적 모습까지 아우르는 아이디어의 경연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공지능마저도 미술계의 총아로 부각되는 과도기이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기로 여긴다면 과거 흔적을 복기할 필요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작가와 예술가들은 자기 창조의 늪에서 벗어나 새 시대의 관객들이 보다 더 이해하기 쉽도록 예술적 행위를 설명하는 방식을 새롭게 찾아야 할 것이다.
박종일 지음 | 도깨비 | 200쪽 | 3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