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우, 필승 2인전 <물과 불Water and Fire>은 필승 작가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시아노타입cyanotype(혹은 청사진blue print)과 검프린트gumprint 사진 작업을 하는 안종우 작가와 노천소성 도자 작업을 하는 자신의 작업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2인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더욱이 안종우의 작업은 물에서 나오는(인화하는) 작업이고, 자신의 작업은 불에서 나오는(굽는) 작업이니, ‘물水과 불火’이라는 주제로 접근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제안을 받은 나는 재미있겠다며 망설임 없이 곧바로 그러자고 동의했다. ‘물’과 ‘불’이라는 매우 대립되는 수단을 다루는 각각의 작업을 한 자리에 모았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데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두 작가의 작업에서 엿보았던 조형적인 매력을, 이들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水’을 사용하여 작업하는 안종우는 ‘기억’을 주제로 작업한다. 그가 ‘기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불완전한 기억’과 그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기록’에 주목하면서인 듯하다. 작가는 일상을 끊임없이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기록하는 자신을 보며, 또 부모님이 기록해 준 사진과 비디오 등을 통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어떤 특별한 순간을 잘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과거가 기록에 의해 다시 기억되기도 하고, 다시 재구성됨을 인지하며 기억, 기록, 회상의 과정에 대하여 고민하는 작가는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억의 조각, 파편들을 시각화한 작업인 「기록역사History Documentation III」 연작을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작가가 직접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 동영상에서 일부 장면들을 발췌한 후, 이미지를 자르고, 대비와 밝기를 조금씩 조절하여 본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화면을 만들어 시아노타입으로 작업한 것이다. 동영상은 작가가 경험한 하나의 기억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고, 변형된 장면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흐릿해지고 혹은 더욱 또렷해지며 변형된 기억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우리가 늘 하고 있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억의 파편들이, 우리 눈 앞에 기록으로 보이고 있다. 기록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기록이 되는 순간이다.
안종우가 그 소재를 도자기 병과 컵, 접시, 그릇, 무명수건(행주), 주전자, 소스병과 같은 주방기구들을 선택한 것은, 이 물건들이 주방에서 늘 쓰이기는 하지만 주방의 주인공은 아닌,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종우의 초창기 작업들은 소외된 물건들에 대한 기억을 뚜렷하게 해주기 위해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그의 작업에서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정물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주방용품을 미묘하게 배치하며 정물 자체의 형태에 집중하고 오롯이 오브제 자체에 대한 감상에 집중하게 했던 태도의 근접성 때문일 것이다.
‘불火’을 사용하는 필승은 소통과 미술의 기능성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도예는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이자 기술이다. 돌도끼와 더불어 토기는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도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냥 곡물을 잘 담는 기능에 집중했지만 점차 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추측이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에 수긍하는 사회에서 이 논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미술노동자’이길 자처하며, 미술의 기능에 대하여 고민하던 작가는 그 해답을 공예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2019년 우연한 기회에 도자작가들과 함께 참여했던 노천소성은 지난 몇 년간 필승의 작업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공예적 접근으로 초기에는 주로 그릇을 만들었던 작가는 이제 그 기능성보다는 그 조형적 가치 그리고 내포하고 있는 메세지에 더욱 주목하는 오브제objet 작업에 집중한다. 노천소성의 기법은 다양한데, 필승은 지면보다 살짝 낮게 땅을 파고 그 안에 기물과 왕겨를 섞어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장작을 올려 불을 붙여 굽는 방식을 사용한다. 주로 백 점토를 사용하여 성형한 토기들을 구워내므로, 불이 닿은 부분은 흰색에 가깝게, 그을음이 닿은 부분은 검은색에 가깝게 만들어지는데 오로지 불이 흙과 공기와 만나 예측할 수 없다. 작가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색은 신비롭고 조화롭다.
“공예란 절대적으로 작가의 감각과 손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 가치를 얻는 것으로 매우 노동집약적”임을 깨달은 작가 필승은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미술노동자’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매우 고된 노동이지만 흙으로 작업하고 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 어느덧 “흙은 세상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흙을 밟고 살아간다. 흙으로 다져진 땅이 없다면 우리는 서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들은 모두 흙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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