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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월호 | 작가 리뷰 ]

오세린, 삶의 아이러니와 서사
  • 김기혜 독립 큐레이터
  • 등록 2024-07-02 10:05:11
  • 수정 2024-07-15 16: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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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린은 인간과 그 주변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한 사건을 한 공간에 연출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우리가 아는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르는 것,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가는 사건에서 맥락을 제거한다. 가판대에 놓일 법한 싸구려 액세서리를 뒤섞어 화이트큐브와 런웨이를 오가고, 3D 프린팅과 도자기를 결합해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가상의 물길을 버젓이 전시장에 구현하기도 한다. 기존의 서사와 맥락을 임의로 해체하고, 남겨진 이미지를 혼합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오세린은 사건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다. 먼 타국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죽은 식물을 기리기 위한 신작 「이민자들」을 선보인 오세린을 논현동 전시장에서 만났다.

회색 시멘트 바닥 위에 연갈색으로 바짝 마른 식물의 줄기와 잎이 놓여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한국까지 사연 모를 먼 여정을 지나온 이들은 겨울을 미처 나지 못했다. 죽은 식물을 위해 오세린은 흙으로 빚은 덩어리에 식물을 닮은 색을 입히고 화장하듯 가마에 밀어 넣었다. 식물과 병치된 도자기는 제멋대로 휘거나 흘러내린 형태로 ‘쓰임’ 또는 ‘보여짐’을 전제하지 않는다. 수평으로 누운 식물은 더 이상 수직으로 꼿꼿하게 설 필요가 없이, 단단한 도자기에 기대어 존재의 마지막 순간을 위로받고 있다. 땅에서 자란 식물들이 다시 흙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리서치 후 사건을 해체하고 위계를 전복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미술적’ 문법이나, 오세린 특유의 '공예적’ 작업 방식과 후가공이 더해져 작가만의 독특한 미감을 완성한다. 학부 및 석사 과정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오세린은 금속의 양감과 무게감에서 오는 볼드함, 무광 또는 유광 처리에서 오는 매트한 표면 또는 광택의 느낌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맥락이 제거된 채 복제되고 재조립된 이미지는 금속(-적인 것) 또는 도자(-적인 것), 조각(-적인 것)으로 다시 태어나 예술적 아우라를 획득한다.

022년 한남동 바이파운드리에서 열린 <숲 온도 벙커> 전시에서 오세린은 3D 프린팅과 도자기를 결합해 초현실적인 18개의 연작 풍경을 만들었다. 상단부의 3D 프린팅 작업은 인터넷에 공개된 오픈 소스 공간 모델링 데이터를 사용해 제작된 것으로, 자동차 도로에 쓰이는 아크릴 스프레이를 사용해 하단부의 도자기와 톤을 맞춰 채색했다. 완성된 작품은 표면이 단단하고 각진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 광택이 각도마다 다르게 보여 사이버틱한 이미지를 더한다. 마치 살아 있다고 믿은 것이 어쩌면 죽었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 살아 돌아오는 요지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듯하다. 현실에서는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낙동강 열목어와 한강 열목어가 함께 헤엄치기에 충분한 가상의 인공 수조인 셈이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사건과 아이러니는 대개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관상용 식물도, 열목어도 자본에 의해 고향에서 밀려났고, 자본에 의해 이식된다. 초기 작품 「모방과 속임수」 연작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가격이 곧 가치가 되는 자본주의의 작동기제를 겨냥한 주제 의식이 훨씬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저렴한 액세서리를 조합해 만든 장신구는 위치재로서의 소위 ‘명품’ 주얼리와 이를 모방한 ‘짝퉁’의 서열을 뒤집는다. 그리고 “(가짜여도 겉모습이) 예쁘면 괜찮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처럼 패션지 화보 등을 통해 빠르게 시스템 안에 ‘진짜’로 재편입된다. 작가의 손을 벗어난 작품은 창작 의도보다 더 창의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계속해서 오리지널 서사를 직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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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6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과월호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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