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망댕이가마 연기와 수북이 쌓인 장작과 흙더미. 줄줄이 불길을 기다리는 사발들과 먼지 내려앉은 명인의 걸작들. 문경에선 한 길 건너 이어지는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도공의 부락에 둥지를 튼 요장 세 곳의 탐방기를 전하며 문경 나들이의 이정표를 세워 보고자 한다.
①무한한 상상력의 공간, 우로실도예조형연구소
홍진식 작가의 우로실도예조형연구소는 그야말로 ‘연구소’라는 표현이 척 들어맞는다. 초입에 들어서자 솟대처럼 길쭉한 인체상이 천진무구한 내색을 비치며 오는 이를 맞이한다. 본인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에 서툴다고 하는 작가가 외지인에게 건네는 산뜻한 인사이자 스스럼을 비워주는 역할이다. 이곳 작품들은 전통적 가치의 명맥을 잇는 여류 명인들의 사조와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돋보이기도 하다. 홍진식 작가는 당시 좋아했던 것들에 공상을 씌우고 형상을 빚거나, 본인의 현재 일상과 연결된 소재들을 끌어온다. 공방 안에는 작가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울룩불룩한 몸통과 최소한의 표정을 하고 쪼그려 앉아 있는 토우들, 건축물을 몽환적인 풍으로 구성한 물고기 벽화, 반려동물과 가족으로 응집한 개인적 세계관 을 표현한 조형 작품까지 어느 둘도 같은 것은 없다. 브론즈, 돌로 만든 인체상에 유닛을 끼워 넣으며 매체 융합을 시도하는 것은 물 론, 때로는 정형 후 남은 굽밥을 뭉쳐 투박한 받침을 만들기도 한다. 이끌리는 것을 잠연히 실험하는 그의 저장고 곳곳에 숨겨 놓은 요소들을 찾노라면, 흙을 조몰락거리는 것이 마냥 즐거웠던 유희의 원천과 잠시 대면하곤 한다.
②공예가 부부의 성주봉 전원 라이프, 라키모
즐거울 락, 그릇 기, 모을 모. 즐거운 그릇들이 모여 있는 곳, 그 말 그대로이다. 도자기를 빚는 강창성 작가, 옻칠을 장식하는 송미교 작가가 함께 일하고, 즐긴 흔적들에 시선이 머무른다. 그릇 더미로 채워진 벤치, 둘러앉아 나눈 회포로 그을린 화로, 볕 잘 드는 다실. 성주봉 밑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강창성 도예가 본가의 밭터에 세운 요장이었다. 홀로 물레를 돌리고,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던 곳에 송미교 작가가 함께한 서사는 대구의 어느 페어에서 시작된 인연에서 시작됐다. 도자와 옻칠의 협업을 모의하던 두 공예가가 꾸리게 된 보금자리이다. 강창성 작가는 소나무 숯 속에 기물을 묻고, 자연적으로 유리질화를 거치도록 한다. 태워서 버리지 않는, 구수한 ‘누룽지’ 같은 미감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의 다완 위에 붙인 송 미교 작가의 자개 장식으로 채운 나비가 그들이 사는 지금을 대변하는 듯하다. 추후 라키모를 복합문화공간처럼 풍성하게 채울 것이라는 미완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도자와 옻칠 체험은 물론, 향 만들기, 다례체험 등 숲 속에서 시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조그마한 우리만의 잔치’를 열고 싶다고 한다. 지금 두 사람은 꿈꿔왔던 방향을 따라 함께 걷는 중이다.
③두고두고 잘 지켜 온 그 시절 작업실, 후의요
열려진 쪽문 사이로 엿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곳이다. 이경희 작가의 요장인 후의요는 당초에는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담배건조장 건물이었다. 황토에 지푸라기를 섞어 미장한 벽체는 세월이 주름지듯 금이 갈라졌고, 바람으로 풍화된 흔적들이 그 진솔한 속살을 드러낸다. 담뱃잎을 따다 줄에 꿰어 말리던 고목 골조와 큰 창문으로 트인 경관이 들어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이경희 작가는 장성유를 도톰하게 바른 부분과 바르지 않은 부분의 질감 대비를 극대화시킨 생활자기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산 능선의 결 문양과 빗방울 문양을 하얀 분청 위에 담소하게 그려 넣거나, 삼각과 사각의 미니멀한 조형 요소만을 화기에 끌어오기도 한다. 벽에 걸린 판화 작가 안상흡의 추상회화, 작품을 고재 위에 무심하게 올려둔 것도 공간의 고즈넉함을 증폭시키는 근거가 된다. 작가는 실용적인 단순함의 감각을 지향한다. ‘쓰이기 위한 그릇을 빚는다’ 는 작가는 매번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리곤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그릇이 어떤 공간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힘입어 다시금 물레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