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주전자를 ‘따르소’로 명명해 조형 언어의 구심점으로 삼아, 비움과 채움의 가치에 대해 재고하도록 했다. 주전자는 동급생 주번과 물을 길어 나르던 초등생 시절의 자전적 서사에서 비롯되어, 그가 추구하는 이상의 세계와 담화하는 수단으로 변모했다. 심신과 이성은 마치 물처럼 한 곳에 긴 시간 고여 머물게 되면 병들고, 썩기 마련이다. 채우고, 비우는 것을반복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의 선순환을 제언하는 수단이자, 타자의 일상과 연결하려는 작가의 예술적 실천이다. 색 화장토를 겹겹이 쌓고, 표면을 긁어 층위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입체적 기질을 함의하고, 내적 본질을 포착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