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거창 산의 특징은 깊음이다. 산을 말할 때 흔히 그 높음의 척도를 두고 격을 부여하거나 혹은 그 산이 가진 의미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거창 산은 높다기보다 깊다. 고도를 높여 오르기보다 굽이굽이 옆구리를 돌아갈 때 산의 가장 내밀한 중심에 닿는다. 첩첩 산골 거창에서도 또 골짜기에 속하는 금원산. 나는 어쩌다 그 깊음의 골 하나에 터를 얻었다. 급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산은 오늘도 긴 그림자로 나의 가마 지붕 쓸어주며 밤 인사를 한다. 사람은 자기에게 묻고, 자기를 가르치며 한 걸음을 걷고 하루를 살아낸다. 더하여 인생 한 갑자를 돌아온 사람이라면 이제 바깥에서 스승을 찾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허허롭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내가 기대어 사는 금원산을 벗으로 두어 아침에 다가가고, 스승으로 두어 저녁마다 닮아간다.
사십여 년 전, 젊었던 나는 스승을 찾아 지구 반대편 미국으로 갔었다. 만만찮다는 프랫pratt, 브루클린으로 가서 그 프랫의 문고리를 잡았을 때 비로소 숨을 내려놓았다. ‘이제 내가 원하는 스승에게 원하는 가르침을 원 없이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당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과 기대는 궤적을 한참 빗나갔다. 학교 안에 있는 나의 개인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미국인 교수님은 일주일에 한 번 내 작업실을 들르셨다. 아 무 말도 없고, 어떤 방향성을 알려주는 일도 잘 없었다. 그저 나를 보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서 신문사로 향했다. 무거운 종이뭉치를 나르면서 네 시간 가량 일을 하고 여덟 시가 되면 프랫으로 가곤 했다. 미국 식당에 참기름을 배달하는 일도 했다. 뉴욕만이 아닌 미국 전역의 식당을 찾아 먼 길을 운전하며 다녀야 했고, 미국의 한없는 평평함 속에 한 줄로 그어진 도로, 나는 평평함을 위에 그어진 길을 오래 달려야 했다. 그렇게 내가 지나간 뒤에는 길만 홀로 남는다. 길은 ‘차바퀴 하나의 간격’의 이어짐이다. 반복되고 중첩된 다. 나는 길을 한 줌씩 주어 담는다. 반복하고 반복하며 시간을 이어냈다. 매일의 하루가 반복되듯이 그렇게 나는 길을 줍고 하루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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