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편병의 납작하고 둥근 기면을 화폭 삼아 그려낸 「그녀의 방」에는 여성으로서의 자아, 작가로서의 자아, 현대인으로서의 일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언뜻 보기엔 전통적인 민화의 형상, 책가도와 기명절지器皿折枝의 형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휴대폰이나 커피잔 등 지극히 현대적이고 일상적인 사물들이 곳곳에 놓인 익숙한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민화에 담긴 상징들이 풍요롭고 다복한 삶을 기원한 것처럼 은소영 작가는 사랑과 소망을 담아 일상의 풍경을 조각한다.
묘사된 사물의 형태는 ‘나’로부터 시작됐다. 근경에서 들여다본 편병 안에 새겨진 또 다른 편병과 항아리는 작가의 실제 작 품이다. ‘그녀의 방’이자 일상의 공간에 많은 기물들이 빼곡하게 중첩되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원경에서 보이는 달 위로 둥실 떠오른 얼굴은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고, 산 위를 힘차게 날아오르는 인물은 자유롭고 싶은 ‘나’의 형상이다. 현대인에게 친숙한 다양한 브랜드의 로고는 위치재位置財가 갖는 사회적 상징과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백토를 사용해 편병이라는 특수한 기형을 빚어내는 원숙한 물레 기술, 흙을 얇게 파내고 형태를 드러내는 숙련된 부조 기법을 통해 은소영 작가는 주제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전에 작가는 뚫려 있는 빈 공간을 통해 양감을 부여하면서 형태를 감추고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투각 기법을 활용해 왔다. 최근에는 평면에 형태를 조각하는 부조 기법을 활용하면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일상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는 삶에 더 가까워진 모습으로서 작가의 손끝으로 새겨낸 현대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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