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산수인물무늬 항아리」는 워낙 희귀한 유물이기도 하지만 특히 굽바닥의 명문이 학술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몸통의 굽바닥은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올라와 있으며 번조할 때 갈라진 틈이 있고 굽에는 모래받침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번조 후에 매끈하게 갈아 내었다. 굽바닥에는 청화로 쓴 ‘己巳閏九月, 酒醉鄕眠叟’의 2행 10자의 명문이 있는데 ‘기사년 윤 9월(1509년), 주인은 술에 취해 별천지에서 잠든 노인’으로 이 도자기의 정확한 생산연도를 기록해 놓았다. 우리나라 조선 초기 도자사와 회화사의 편년 기준이 되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동안 조선 초기 청화백자의 제작 연도가 확실한 작품은 한 점이었다(「백자청화 ‘홍치 2년’ 명송죽문호」, 동국대학교박물관). ‘己巳閏九月’은 1509년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反政의 공신들이 조정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활개 치던 중종 4년의 가을이다. 9월 5일(甲子) 밤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희귀한 유물이기도 하지만 특히 굽바닥의 명문이 학술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몸통의 굽바닥은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올라와 있으며 번조할 때 갈라진 틈이 있고 굽에는 모래받침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번조 후에 매끈하게 갈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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