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참외모양꽃병」은 몸통이 참외 모양이며 기다란 목과 입구는 참외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실제로 참외가 꽃이 피고 열매가 커지면서 일정 기간 동안 참외에 꽃이 붙어 있는데 그 순간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고려청자의 비색청자 절정기인 12세기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참외 모양의 몸통은 8릉형이며 목의 중심부에는 3줄의 음각선이 있다. 전체적으로 삼등분하여 목과 입구, 참외 모양의 몸통, 주름지고 높은 굽 받침으로 구분되며 표면의 유약은 맑고 투명하며 옅은 빙렬이 나 있다. 이들 경계에 해당되는 곳에는 낮은 양각의 선이 둘러져 있으며 수리나 파손된 곳 없이 온전하다. 아름답게 주름진 높은 굽바닥에는 다섯 곳의 내화토 받침을 하여 번조한 흔적이 있고 사용에 편리하게 곱게 갈아 내었다.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비색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몸통의 균형미와 발색이 어우러진 최상급의 작품이다. 이러한 형태의 양식은 중국의 자주요와 경덕진 가마에서도 제작되었으며 전남 강진군 사당리 7호, 8호 청자 가마터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청자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유물의 보관 상자에 쓰여진 구한말 당시의 기록이다. 상자의 옆면에는 ‘조선소화병朝鮮燒花甁’으로 묵서되어 있고 상자의 뚜껑 안쪽 면에는 유물의 입수 경위와 장소 날짜 등 중요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간략히 기술하면 “1908년에 상업시찰단으로 조선국에 방문하여서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 화병을 취득하여 돌아왔다.”라는 내용이다. 이 문구가 시사하는 문제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개성의 고려 무덤을 도굴하여 일본인들에게 고려청자를 판매했다는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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