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이 흙으로 빚어낸 조각은 자연스레 뻗는 줄기처럼 보인다. 공간을 점유한 조각들은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언제라도 꿈틀대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조각이 꼭 움직이는 사물을 촬영한 결과물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박지원은 사회적 통념 같은 특정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작업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운 형태를 다지는 작가에 가깝다.
박지원은 흙덩어리를 평평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단단한 흙덩어리를 힘껏 작업 테이블에 내려치거나 밀대로 밀어 평평하고 부드럽게 만드는데 이는 종이접기 하듯이 흙을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펴기 위함이다. “평평한 흙을 제 의지로 접거나 구부려 세워서 입체적인 기둥을 만듭니다.” 박지원의 말처럼 그의 모든 작업은 기둥에서부터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어떤 기둥도 같은 형태가 없다는 점이다. “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박지원은 나무를 통해서 작업의 방향성을 그린다. 나무는 모든 생명체와 인연을 맺고 공생하며 굳건하게 환경에 적응한다. 비록 비스듬하거나 굴곡지고 균열이 생길지라 도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바로잡고 주변과 균형을 이룬다. 박지원에게 나무의 팽창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열망의 몸짓이자, 희망의 찰나인 셈이다.
박지원의 조각들은 작가의 성장통에 가깝다. 형태와 쓰임이 다름에도 하나로 연결된 줄기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줄기들이 과연 온전한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줄기가 과정으로 남는다면 작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이 만든 줄기는 결과로 공간을 점유한다.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는 분명 다르겠지만, 과거의 제가 불완전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시에 저는 그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았으니까요.” 박지원의 줄기들은 스툴이, 화병이, 벽에 걸린 조형물이 되거나 탑처럼 솟은 기동이 된다. 그렇게 독립된 존재로 공간에 놓인 줄기들은 시의 은유적 표현처럼 각자의 존재감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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