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INTERVIEW]
퇴임 아닌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김종인
서울여자대학교 아트앤디자인스쿨 공예전공 교수
— 오는 8월 15일 15년 동안 재직해온 서울여대에서 퇴임을 앞두고 계시는데, 교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서울여대는 기본적으로 정년이 25년 이래요. 30년이 훨씬 넘으신 분들도 많았는데 저는 15년 잠시 있다가 현장으로 다시 가는 거죠. 전 퇴임이라는 말보다 현장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몇십 년을 헌신하신 분들은 퇴직한다는 말이 맞아요. 허나 저는 제가 재미있게 놀다 가는 것 같아요. 헌신과 희생과 봉사 보단 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여정은 영국 유학을 바탕으로 도예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를 거쳐 쓰임으로서의 도자기와 순수한 창작예술로서의 활동을 모색해왔습니다. 이론과 창작까지 두루 겸비한 도예작가를 서울여대 교수로 채용한 것이 당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생각으로 자리를 옮기셨나요?
제가 만 오십에 서울여대에 왔을때 여러가지 상징적인 것이 많았어요. 그때가 서울여대 건학 50주년이 되는 해였고, 당시 이광자 총장님이 건학 이념을 잘 이끌고 갈 수 있는 졸업생들이 학교에 들어와야 한다면서 동문들을 굉장히 많이 부르셨어요. 공예학과는 학교를 배 밭에 세울 때부터 있던 대표적인 학과였어요. 여성이 갖춰야할 덕목으로 지·덕·술·체를 배워야 한다는 건학 이념을 내세워 기독교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회학과, 공예학과 기본 네 개 학과를 세웠거든요. 당시 공예학과 출신의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고, 졸업 후 흩어진 동문들의 네트워크 또한 필요하다 생각해서 나이 오십에 지원하게 됐죠. 나도 생뚱맞았지만 당시 총장님이나 공예학과 천복희 교수님도 부담이 컸을 거예요. 생각을 해봐요. 나이 오십인 사람이 후임 교수로 오는데, 가르쳐본 적도 없고 평소에 만나본 적도 없고, 바깥에서 들을 때는 승질 더럽고 혼자 잘난 척하고 마음에 안 드는 애를 과 교수로 부른다는 게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천복희 교수님이 다 떠안아주셨죠.
— 재직하면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요?
많은 동문들이 바깥에서 활동을 하는데 학교로 모이는 일이 없었어요. 본교 출신들은 많은데, 소식을 알 수 없었고, 사회활동 중인 선배들이 후배들을 찾으려해도 어디에 연락할지 모르는 거죠. 학교엔 중심점이 없어 흩어지고, 연결이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공예학과 동문회를 만들었어요. 일하는 동문, 회사에 있는 동문, 재력있는 동문 등 바깥에 있는 동문 네트워크를 찾기 시작했죠. 초기 1회부터 지금까지 총 인원이 2천명이 넘었어요.
선배님들한테는 돈을 내달라고 부탁하고, 내 쪽에는 돈 좀 내, 후배들한테는 어디서 뭐하고 지내니 하면서 안부를 물었죠. 윤제시카 선배님은 서울여대에서 제일 큰 장학금을 내주시는 분인데, 초대 동문회장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동문회장을 맡고 계세요. 미술대학교 장학금에서 서울여대 발전기금으로 올해 4억을 내셨고, 공예학과 장학금을 만들어 주셨어요. 공예학과 동문이라는 것에 의기양양해지는 거죠. 많은 동문들이 있는데 중간에서 주재하는게 제 역할이에요. 이렇게 안과 밖이 연결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교양 과목으로 해피 크라프트를 개설해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과목으로 알려져 조기 신청종료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해피 크라프트를 만든 게 재직 15년 중 가장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어요. 제 공예철학이 녹아있는 수업이에요.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공예는 삶이잖아요. 공예는 행복하고 좋은 건데, 교양 수업을 통해서 전공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흙의 물성을, 공예를 만나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걸로 충분하거든요. 평생교육의 토대는 교양 수업에서 시작됩니다. ‘선생님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즐거웠어요. 수업 자체가 해피 크라프트 였어요.’라고 강의 평가 해준 학생이 있어요.
해피크라프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술을 통해 재미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인생의 정점을 찾는 거예요.
— 이렇게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예수업의 가장 큰 목표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게 다 공예다. 하고 싶은 걸 해봐라, 네가 생각하는 공예가 뭔지 생각해 봐’ 라는 것이 첫 번째죠. 흙이라는 물성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전부 가능하다는 걸 알려줘요. 그래서 흙이라는 매체 외에 믹스 미디어, 흙의 물성(손성형), 물레성형 등 구성된 3개 반으로 증설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적, 출석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놀라고 합니다. 개판을 쳐도 좋다고 말해도 처음엔 뭘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가 막상 흙을 만져보고 물레를 차보면 너무 재미있는 거죠. 머리에 흙이 묻고 난리가 나도 그게 자랑스럽고 재미있는 거예요. 평생교육이라는 토대는 교양 수업에서 시작돼요.
(중략...)
마니미니재미형상_300x100x250cm_도자,금속_2021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조금 체력적으로 고단한 상태라 잠깐 쉬고 싶어요. 15년 동안 한 번도 못 쉬었거든요. 연구년이 한 학기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었어요. 그리고 비대면 수업 맡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요. 그 비대면 수업 준비하는데 한 학기 걸려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래서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죠.
‘마니미니재미가게 그동안 하고 싶으셨거나 관심이 있거나 아직 기억하고 계신 분들, 마미재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도 같이 놀아보시겠습니까’ 하고 재미있게 놀 생각을 하니까 저는 좋아요. 그래서 방 빼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번 재미나게 해봅시다. 지금 재밋거리가 너무 없어요.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