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 EXHIBITION REVIEWS]
시간과 시간, 현실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된 궁극적인 이상향
홍완표
「목련이 필 때」35x34cm
「부부송」33x42cm
기호 이론으로 자주 언급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는 “나는 구경꾼으로서, ‘감정’에 의해서만 사진에 흥미를 느꼈다. 사진에 질문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의 상처로서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나는 눈으로 보고 느낀다. 그러므로 구별하고, 바라보고, 그리고 생각한다.”고 했다.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읽으며 시각예술인 미술, 그중에서도 사진에 대해 이토록 깊은 통찰洞察이 가능하다는 것이 퍽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시각예술의 한 장르라고 볼 수 있는 도자 예술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접근 방법과 지향 그리고 도출되는 감정과 해석은 저마다의 방식에 따르면 그만이지만 동시대 타 시각예술 분야에 비하자면 철학적 사유와 비평의 부재는 두드러진다. 물론 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술회述懷가 담긴 조선 시대 문인의 글이나 근대 이후 저명한 미술사학자, 역사학자, 수필가, 시인, 화가 등이 한국미의 전형이라며 언급한 백자 달항아리에 대한 상찬賞讚은 대중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고유의 제작기법을 계승해 재현한 흔히 말하는 전통 도자는 물론이거니와 현대미술의 범주에 포괄되는 현대 혹은 조형 도자의 가치와 의미,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은 현저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홍완표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삶과 작업에 대한 채록採錄을 진행하는 중에 불현듯 든 생각이다. 타인, 그것도 예술에 인생을 건 이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이 어렵사리 내어놓은 대답을 정리하는 과정은 지난할지언정 이러한 일들을 업으로 삼는 학예사 혹은 비평가들에게는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하겠다. 절실히 공감해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되거나, 도무지 납득 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과는 상관없이. 홍완표 작가의 작업은 서화書畵와 도자기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근간根幹을 둔다.
1957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 김옥진沃山 金玉振(1927~2017) 등 남종화南宗畵에 영향을 받은 이창문東谷 李彰文(1932~) 선생에게 한국화, 외삼촌인 청담 한창문淸淡 韓昌文(1924~1996) 선생에게 도자기를 사사했다. 군 제대 후인 1981년, 작가는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외삼촌의 작업실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며 서화에도 열중하던 작가는 1987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한국화 화실을 열고 서화 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하지만 한국화로 생계를 잇기 어려워 도자기에 눈을 돌린 작가는 1990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처음으로 도자기 공방을 설립하였고, 1992년 안성문화원에서 첫 도자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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