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 YOUNG ARTIST]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고려청자, 특히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의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청자’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병민 작가는 이런 이미지를 넘어 청자의 다양한 모습을 알리고자 작업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작가가 나고 자란 해남의 청자가 자리한다.
정병민, 청자의 세계
「상감청자 구름학무늬」 주기세트 약 6.5×6.5×7cm(잔 ) 약 6.5×6.5×17cm(주병)
「해남청자 항아리」 약 45×45×48cm
정병민 작가가 도자기, 그 중에서도 청자를 시작한 데에는 집안 환경의 영향이 컸다. 전남 해남에서 3대째 청자 작업을 하는 아버지, 남강 정기봉 명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해남청자’를 재현했다. 교과서에 실린 비취색의 청자와 달리 해남의 흙에 다량 함유된 철분으로 인해 황색이 섞이고 검은색 점(철점)이 드러나기도 하는 ‘해남청자’는 ‘녹청자’라고 불리며 한때 청자의 아류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해남 지역에서 대규모 가마터와 유물이 발견되면서 강진청자를 앞선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었고 지금은 해남에서만 만들 수 있는 독자적인 청자로 인정받고 있다. 정병민 작가에게 ‘해남청자’는 작업의 ‘뿌리’가 된다. 작가는 아버지를 사사해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 해남에 머물지 않고 경기도 이천의 예스파크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해남청자’를 접해왔고 대학에서 도자를 전공하긴 했으나 청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4년 남짓 되었다. “중국 경덕진에서 5년 정도 공부하고 작업하다가 2019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청자 작업을 시작하면서 청자의 여러 기법 중에서도 정수精髓라고 꼽히는 상감을 해보고 싶었어요. 막상 해보니 공정이 너무 여러 단계라 오래 걸리고 어려워요. 그래도 상감 작업만은 놓지 않고 계속하려고 합니다.” 작가에게는 70~80년대쯤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청자’ 책이 있다. 작가는 여러 청자 유물 사진과 도안이 실린 이 책을 교과서 삼아 고려청자를 하나씩 재현해보고 있다. 작업실에서는 그 유명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뿐만 아니라 청자 상감 정병과 이중 투각 항아리까지 그 동안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진득한 고려청자 재현을 바탕으로 차차 자신만의 청자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나누는 ‘더공유’
정병민 작가는 역시 도예가인 아내 유정현 작가와 함께 ‘더공유’라는 도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일부러 도자기를 연상시키지 않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청자가 갖는 전통적인 이미지와 맞지 않아서 오히려 인상적인 것 같아요.”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작가의 정성이 담긴 작품을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널리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만든 이 이름은 청자의 이미지를 더 신선하게 전달해 준다. 작업실과 이어지는 ‘더공유’ 쇼룸에서는 청자 다구부터 주기 세트, 접시, 향꽂이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청자의 색과 문양 때문에 언뜻 보면 전통 청자를 재현한 것 같지만 하나같이 두 작가가 새롭게 개발한 것들이다. 청자 개완이나 퇴수기, 주기 세트, 에스프레소 잔처럼 요즘의 쓰임에 맞게 디자인해 만든 기물도 있고 전통적인 요소를 재미있고 자유롭게 활용한 제품도 있다. 사자를 닮은 상상 속의 동물로 향로의 뚜껑에 장식으로 얹었던 ‘산예狻猊’를 모티프로 만든 향꽂이와 오브제는 특히 특이하다. “청자를 박물관에서 보긴 했지만 일상에서 쓰는 걸 아직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 쇼룸에 와서 저희 작업을 보시고 청자도 새롭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고 청자에 친숙해지면 좋겠어요.” 결혼하면서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된 유정현 작가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청자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저는 전통적인 학 문양을 좀더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산예’ 받침에 모던한 볼을 얹는 등 새로운 기물을 주로 만들고 남편은 전통 청자를 깊이 파고드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잡았어요. 몇 십년을 청자에 매진한 명장님들에 비해 전통 청자를 하는 젊은 도예가는 거의 없거든요.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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