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 EXHIBITION REVIEWS]
수평적 혼성과 원초적 쾌가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
박경주의 잼 플레이
박경주는 네온, 발견된 오브제, 도자, 드로잉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전시에서 작가가 여러 재료를 뒤섞고 매칭하며 느꼈을 작업의 즐거움이 오롯이 느껴진다. 작가는 자신의 감각에 맞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미술과 자기표현의 재료로 활용하고 섞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가공품, 비가공 재료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박경주의 세계로 들어와 작가의 감각으로 재정열되고 매칭 되면, ‘박경주화’되는 생경함과 신기함, 놀라움이 있다.
「JAM PLAY」 65×57×6cm | neon | 2022
(좌측부터)
「JAM PLAY」 11×25×7cm | clay, glaze, glass, mixed media | 2022
「JAM PLAY」 19×27×10cm | clay, glaze, glass, mixed media | 2022
「JAM PLAY」 10×20×5cm | clay, glaze, glass, mixed media | 2022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도예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는 서구 미술사조와 문화의 유입으로 한국공예의 표현이 공예다움보다 조형, 대형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한창일 때였다. 물레성형을 버리고 너도나도 고화도 유약과 고온번조를 이용한 요변窯變효과, 전통과 현대성 같은 무거운 표현과 주제를 내세웠다. 전시대를 버리고 설치나 거대한 외부 조형물 제작에 열을 올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시류와 달리 고명도·고채도 저화도 유약과 아이코닉하고 유쾌 발랄한 표현을 추구하며 차별화했다.
기성 공예 표현의 무게, 허세와 차별화하려 했던 작가의 초기작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개인주의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아 정체성을 풍자하거나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상세계 속에서 인간이 내몰리는 자아 상실과 인격혼란 등 시의적 문제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여러 페르소나들이 더해지며 사회 현상과 현대인의 욕망을 풍자하였다. 전시를 거듭하며 들고 사라진 여러 도상들-TV, 브라탑, 하이힐, 립스틱, 생선뼈, 거울, 핸드백, 전화기, 수학 기호 등은 작가가 일상사물 혹은 대중 이미지에 빗댄 자신의 모습이다.
이번 아트비트 갤러리와 갤러리 제이콥에서 연 전을 위시로, 박경주의 근작에서 여러 도상의 기표와 기의 관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환유換喩,metonymy만이 남았다. 이 공허한 기표들은 표면성, 우연성, 인접성, 의미의 공백, 불확정성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수사학의 특징을 공유한다. 사물의 기표는 친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고 새로운 사물과 만날 때 새로운 기의가 발생한다. 각 도상들은 본래 고정된 기의에서 벗어나 재정립된 작가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은유나 상징체계로 코드화된 것들이다. 따라서 박경주의 작업을 몇몇 여성성과 관련된 기표들을 단초로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슈 등의 메시지로 읽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번 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도자의 비중이다. 전작까지 작가의 아이디어, 사고의 중심이자 작업 방식은 도자가 중심이자 출발점이었다. 다른 매체, 재료는 보조 혹은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도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도자는 작가의 다른 오브제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매체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도자는 주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재료, 매체와 동등한 ‘즉흥 연주Jam’의 일원이다. 그간 작가의 환상세계가 진화와 변이를 거듭할 때마다 새롭게 결합하고 통합되며 형성된 작가의 환유체계가 이번 전에 이르러 주체와 타자로 위계화된 수직적 사유를 완전히 벗어나 여러 개체들의 집합과 상호 관계가 수평적 구조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러한 표현의 수평적 구조를 보며 박경주의 작가 정체성을 더 이상 도예 혹은 공예라는 장르로만 묶어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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