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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월호 | 칼럼 ]

[칼럼산책]제 것일수록 자연이다
  • 김동현 테일러, 프리랜스 에디터
  • 등록 2022-03-31 09:53:08
  • 수정 2024-08-09 12: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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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산책 | Column]

 

제 것일수록 자연이다

글. 김동현 테일러, 프리랜스 에디터

 

남산 기슭을 따라 올라가는 막바지 겨울 소월로의 정취는 상쾌하기도 합니다. 입춘이 지나 멀리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한기를 뚫고 여물어터진 은행 한 알을 나무가지에서 떨어뜨립니다. 숨막히는 도회에도 남산 둘레를 오르면 철마다 잎이 변하고 열매가 맺히고 꽃이 피는 이러한 정취가 있습니다. 나는 귀국해서도 여전히 이런 리듬 안에서 글을 쓰고 바느질을 합니다. 남산 모퉁이에 새로 차린 양복점에 앉아 오후에 가봉을 보러 올 손님을 기다립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차를 한잔 내려 시쳐놓은 양복을 보고 그 분의 체형도 한번 떠올려봅니다. 적당히 몸에 맞고 적당히 여유있어서 옷 주인이 흐믓해 하길 바랍니다.
작업대 옆의 가느다란 목봉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있는 손님의 옷본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종이 위에 흰선은 초크 선이고 누런 것은 종이니 초크선 안 쪽이 옷이 되는 것이고 그 테두리 밖은 옷이 안 되는 것 입니다. 전자가 육체요, 후자가 외계입니다. 나는 이 선 안쪽에 옷을 표현해야 되고 몸의 선도 생각해야 되고 외계를 조금 끌어와 인체에 보태는 선도 그려야 됩니다. 골똘히 생각 후에 하나의 흰 선을 그리는데 그것을 오리면 옷본패턴이고 원단  위에 놓고 자르면 옷이 됩니다.
인체를 위해 옷에 공간을 마련해 그것을 채워 넣는다는 관점으로 볼 때 그 관점과 표현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나는 그 면을 충실히 채우고자 하는 태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이 단순한 공간에 지나지 않아(흰바탕 後素) 주관이 있는 바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면을 충실히 채워야 한다는 것은 옷이 육체에 입혀질 때 남는 부분을 제거한다는 역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깎아내야 알맞게 충일됩니다. 쉽게 말해 바지의 허리둘레가 커서 허리를 줄이는 것은 옷감을 깎아 내서 공간을 두지 않고 인체를 채우는 일입니다.  두 번째 입장은 면을 채우는 입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면을 허용한다고 설명됩니다. 다시 말해, 인체 위에 원단이 남으면 그것은 여유가 됩니다.

 

포류수금문 정병


도자를 예로 듭시다. 꽃그림. 예컨데, 당초문, 연화문, 연주문 상하좌우로 끊임없이 패턴이 나열됩니다. 주어진 면에 한계를 만들어 구획을 합니다. 평면, 기계적으로 나열되어 꽃그림의 패턴에 공간적 깊이는 없습니다. 이슬람의 아라베스크와 같이 한계의 면을 채운 패턴이 나열될 뿐입니다.
반대로 운학, 매월, 매죽에 학, 강가에 버들, 물과 날짐승들, 풍경과 정취를 면에 채워 넣는 것은 어떨까요. 물과 하늘 사이에 면을 놔두면 (면으로 인식하고 그리지 않습니다만) 그 공백과 대류 안에 어떤 벌레와 꽃과 짐승들이 보일지 모릅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미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고유섭 선생의 말을 빌리면 앞이 빈틈의 공포에 찬 것이라고 하면, 후자는 빈틈의 쾌락에 젖은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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