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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월호 | 칼럼/학술 ]

[문화재 돋보기 ⑫] 백자 청화기린무늬 향로
  •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등록 2022-02-25 12:53:19
  • 수정 2024-07-05 11: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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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 | Spotlight on National Treasures]

 

백자 청화기린무늬 향로

글.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 청화 기린무늬 향로白磁靑畵麒麟文香爐」 조선시대. 높이25cm, 입지름 16cm

 

경기도 광주 분원리는 19세기 조선왕실에서 필요한 도자기를 생산하던 도자기 공방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된 곳으로 다양한 종류의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한 조선후기 최대의 관요官窯였다. 풍부한 물과 목재, 고령토의 근접성이 용이하고 도성인 한양으로의 편리한 운송수단水路이 조선 왕실의 도자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도자기 향로를 본격적으로 제작한 시기는 고려시대로 형태와 문양이 매우 다양하며 현존하는 유물도 여러 종류가 남아있다. 기린, 사자, 오리, 용, 어룡, 투각 칠보문, 연꽃봉오리 등의 상형청자 향로를 비롯하여 방형이나 원통형의 물가 풍경 무늬나 한나라 청동기를 인용한 도철무늬 향로, 향완형 향로 등으로 대부분 실내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이다. 당시 융성했던 불교문화와 차문화의 유행과 더불어 의식용구나 다도구로 주로 상류사회에서 애용되었다. 이런 전통은 유교문화로 변화된 조선시대도 이어져서 제례용 도구로 도자기 향로가 꾸준히 제작되었으나 고려시대에 비하면 획일화되고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조선 초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향로의 경우에는 한나라 청동기의 향로를 인용한 복고적인 모습도 보인다.
조선시대 백자향로는 대부분이 순백자, 투각백자, 음양각백자로 표면에 청화안료 문양을 넣지 않는다. 간혹 청화안료로 초화문을 시문하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사례이고 유교의 제례에 사용되기 때문에 현란한 청화안료의 문양을 자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사진1의 「백자청화 기린무늬 향로白磁靑畵麒麟文香爐」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향로의 몸통에는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麒麟을 구름위에서 비상하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 넣었는데, 물론 왕실의 화원 화가 솜씨이며 세 다리와 목 부분까지 여의두문을 촘촘히 그렸다. 그리고 곧게 선 구연부는 번개문雷文을 둘렀으며 형식화시킨 작은 손잡이를 달았다. 향로의 다리부터 입구까지 온몸에 청화안료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다.
태토는 정성껏 수비한 양질의 백토를 사용하여 성형하였고 맑고 투명한 담청의 유약을 골고루 입혔으며 세 다리 바닥에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 받침으로 번조하였다.
세련되게 균형이 잘 잡힌 이 향로의 기형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놓여 있는 청동향로의 모습과 비슷하다. 금속제 향로를 생각하며 도자기로 빚은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통에 그려진 ‘기린문양’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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