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담화 | Critic in conversation]①
´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
글. 홍지수 미술학, 미술평론
또다시 한 해가 밝았다. 누구나 새해 벽두에 예견된 365일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과 포부가 남다른 때다. 올해 말미에 이르면, 8760시간을 살고 만든 결과에 대해 자신 혹은 타인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간이 온다. 공예가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이고,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야 공예가로서 살아야할 삶을 온전히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작업실, 전시에 가는 일을 일상으로 사는 나는 작가들과 ‘절대적 시간’과 ‘온전한 시간’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절대적 시간´이란 작가가 무엇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물질과 노동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을 말한다. 각자의 작업 내용과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순수 미술 작가들보다 공예가들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긴 것 같다. 개념에 따라 타인에게 작업을 맡기거나 일상에서 가져올 수도 있는(발견된 오브제) 순수 예술가들과 달리 공예가들은 스스로 재료의 손질과 완성까지 다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작업 공정의 일부를 맡기는 것이 직성에 맞지 않거나 작가 스스로 현실 공간에서 무엇을 만지고 두드리고 덜어내는 작업의 미와 특징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한 작업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희열과 만족감이 공예가 스스로에게 삶의 동력이자 작업의 이유인 경우도 많다.
반면 ‘온전한 시간’은 작가가 반드시 작업실에서 재료를 만지고 형상을 만드는 노동의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가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특히 결혼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혹은 자신, 주변인의 병간호, 작업실의 부재 등등의 이유로 작가로서 활동의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 작업실에 가지 못하는 것,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작가에게 조심스레 ‘평상시 온전히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본다.
‘온전한 시간’은 작업실에서도,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자기 전 침대 위나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도 보낼 수 있다. 언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니 집, 작업실, 화장실 곳곳에 메모지와 필기구를 두는 조바심과 열의가 있는가? 작업할 시간이 기대되어서 이 밤이 얼른 지나 아침 해가 뜨길 고대한 적은? 작업실에 들어가는 마음이 연인을 만나는 것 마냥 설렌 적은 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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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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