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유약, 세라믹의 옷 ④
라쿠, 즐겁지 아니한가_도예가 양동엽
글. 서희영 객원에디터 사진. 이은 스튜디오
산수를 담은 찻그릇에 편안함이 깃들었다. 작가는 300그램 여남은 무게의 찻사발을 올려다보고 만지고 마시고 내려다보며 잔잔한 평화가 깃들기를 소원했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 이롭기를…
화려한 퍼포먼스의 전리물
유약이 녹아가는 뜨거운 가마를 열어 말간 불덩어리 상 태의 기물을 긴 무쇠집게로 꺼내 톱밥에 묻으면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작가는 얼굴에 이중삼중 가림막을 쓰고 우주인처럼 두터운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러운 작업을 이어간다. 조심스럽지만 결코 단아하지 않은 이 작업은 기물을 톱밥이나 젖은 신문지에 이리저리 굴리고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산화와 환원의 효과를 준다. 처음보는 사람 눈에는 뭐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더 신기하다. 마술을 부리는 듯 불길과 연기가 솟아오르면 미지의 연금술 같기도 하다.
라쿠소성을 하고 있는 도예가는 1000도가 넘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이리저리 다뤄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기물의 소지부분과 유약면에 예술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이런저런 복잡한 계산들이 분주하게 떠오른다. 더불어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유해가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화려한 퍼포먼스는 불덩이를 조련해 예술을 얻고자 하는 작가의 사투다. 도예가 양동엽은 라쿠 찻그릇을 만든다. 84년대 북미작 가들에게 라쿠가 유행하던 시절 유학으로 라쿠를 접했다. 캐나다 앨버타예술대학 재학시절, 야외작업장에서 라쿠워크숍을 하는 걸 지켜보던 그에게 주임교수인 앨버 트보크Albert Bork가 라쿠의 원류가 한국이라고 알려 줬다. 처음듣는 라쿠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고 라쿠가 일본에서 영국으로 북미로 전해졌다는 것과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 귀화한 신지로가 시초임을 알았다. 라쿠의 역사를 알고 더욱더 애정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조형위주의 작업으로 주류를 이루던 교수들의 영향으로 조형라쿠작업을 하며, 캐나다 앨버타 예술대학과 밴프센터 레지던시 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대구공업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며 귀국했다.
인체에 무해한 라쿠찻그릇
양동엽 작가는 2000년 초반부터 차인인 지인의 권유로 찻그릇을 작업하기 시작했고, 라쿠작가인 그에게 라쿠 찻그릇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애초에 라쿠가 찻그릇 에서 시작되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조형 도자에 사용하던 저화도 라쿠유약을 사용할 수 없어 고심하던 그에게 97년 연구한 장석유약이 번쩍 떠올랐다. 라쿠소성용 소지는 급열과 급냉을 견뎌야 하는 다공질이어야 한다. 그는 내화점토와 석기점토를 기본으로 볼클 레이를 20%정도 첨가한 삼백토를 주로 사용한다. 가마의 열기가 정점에 올랐을때 가마를 열어야 하는 라쿠 기법의 특징상 고화도 유약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 인 라쿠작업에는 저화도 유약을 주로 사용한다. 이런 저화도 유약은 납이나 중금속류의 유해물질로 부터 안전할 수 없다. 특히 북미지역의 조형작업용 라쿠가 전해진 우리나라에서는 라쿠그릇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양동엽 작가는 “97년 대학에서 소지와 유약 을 수업하던 중 인체에 무해한 라쿠소성용 장석유약을 개발했었죠.” 유약을 개발했을 당시엔 연구성과로 유약 데이터를 만들었지만, 특별히 자신의 조형작업에 사용할 필요는 없었는데 찻그릇을 작업하며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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