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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월호 | 작가 리뷰 ]

젊은작가 김준명
  • 편집부
  • 등록 2021-06-30 16:30:18
  • 수정 2021-07-29 10: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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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

 

월간도예가 주목하는 도예가

새김으로 축적된 시간
김준명

글.이소현미술사·예술학 연구원 사진.편집부

 

영은미술관 제4 전시실의 넓은 공간이 도자로 빚어진 돌로 가득 채워졌다.
도심 속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가듯, 돌과 돌 사이에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다 보면 하나하나에 새겨진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달’, ‘별똥별’부터 ‘동양’, ‘한국적’, ‘동네’, ‘문명’과 같은 지리 문화적인 어휘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단어가 다양한 글씨체로 조각되었다.

 

김준명의 개인전 <돌 그리고 새겨진 단어들 Stone with Engraved Words>은 시간, 자연, 물질과 인간의 사소한 습성에 대해 ‘돌’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우연히 마주한 대상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작가의 주관적 영역에서 출발했으나 다수의 유사 경험으로 확대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실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의 외형을 지닌 작품은 이성과 객관성을 지향하는 현실성reality을 내포한다. 그러나 본 전시가 보다 각별한 이유는 작품에 내재된 현실성과 더불어 지각 체계에 의존적인 사실주의의 모순을 동시에 가시화한다는 데 있다. 그의 작품은 주관적 영역과 객관적 성질을 아우르며 주변과 중심, 전통과 동시대성, 시간의 단일한 흐름과 같이 고착된 개념을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돌덩이,돌멩이그리고도자기
전시는 자연의 ‘돌’, ‘새기다’라는 행위, 문화에서 파생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돌덩이’ 혹은 ‘돌멩이’를 왜 도자로 작업했을까? 또, 그것에 낱말을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질문은 반짝이는 표면의 질감과 인위적인 채색, 그리고 사용가치가 전혀 없는 ‘도자기’라는 대상이 발산하는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낯선 감정의 근원에는 바로 ‘도자로 제작된 돌’이 있다. ‘도자’에는 역사적 전통과 문화를 비롯해 산업적인 특성까지 스며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작은 찻잔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담긴 이야기는 수백 년을 아우르기 마련이다. 작가가 ‘돌’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보인다. 주변에서도 더 가자리에 위치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돌’은 미적 영역의 ‘도자’와 결부된다. 그는 도자의 가장 기본적인 제작과정에 충실하면서 예상치 못한 대상을 도자로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낯선 느낌을 시각화한다. 바위로부터 떨어져 가늠하기도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돌’은 그의 손을 거쳐 ‘도자’의 역사성과 마주한다. ‘돌’과 ‘도자’는 흙으로 빚어진 반짝이는 작품 안에서 공명하며 시간의 흐름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통과 동시대 문화에 대한 고민을 말한다. 기호가 각인된 돌 모양의 도자기는 거장의 한 획과 아직은 미생인 작가의 손이 닿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공예에 깃든 노동과 수행의 의미를 되짚는다.


흙과손
본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질적인 대상의 접합에 근원한 언캐니uncanny뿐 아니라 도자 제작의 기본 재료인 ‘흙’을 추상적인 매체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흙에 대한 그의 사유는 일반적인 결을 벗어나 사실적인 재현에 담긴 리얼리티의 모순과 획일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데 매우 주요한 동력이 된다.
작가는 흙을 ‘예견된 실패’를 안겨주는 매체로 이해한다.
자연을 조각한 신의 능력과 비교한다면, 자신의 손은 완벽한 재현의 실패를 거듭하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대상의 실재에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 작업에 임하지만 빚는 행위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주의의 모순을 폭로한 학자들의 논지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일례로 ‘나무’라는 대상을 똑 같이 묘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작업은 대상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무’는 망막과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에게 인식되는데, 이 과정에서 대상은 왜곡된다. 더불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시각은 당대의 문화적 범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왜곡된 대상의 이미지는 사회구조적인 습성의 필터를 거치며 또 굴절된다. 따라서 묘사된 결과물은 대상 ‘나무’와 절대적으로 같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실주의적 재현의 모순이다. 김준명은 흙으로 돌을 빚는 과정에서 이를 깨치고 ‘신과 같이 않음’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그 결과 중심과 주변, 숭고한 대상과 미물의 경계 및 판단 기준에 의문을 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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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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