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끝이 아닌 변화의 시작
박정근
글 사진. 김성희 객원 에디터
박정근 작가는 올해 2월 20일부터 3월 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일삼에서 일곱번째 개인전을 선보였다. 전시 주제는 <from the infinition>(변동체, 變動體)로 완성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업의 행위, 변형, 연속성 등 과정의 본질에 대해 소개하고자 했다. 결과로 보여지는 뻔함이 아닌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움, 그 속에 감춰진 에너지 등 조금은 색다르게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다.
작가의 바램을 담아 제작한 탑
박정근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단연코 탑 형태의 설치조형 작품이었다. 한단한단 쌓아 올린 탑 형태의 작품은 올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컸으며, 백색 화장토가 입혀진 외형은 하얀 눈을 맞은 듯 신비로워 보였다. 탑의 구조는 우리나라의 불탑과 같은 일정한 형태의 모듈이 쌓아져서 만든 모습이다. 물론 그가 만든 탑은 종교적인 탑은 아니다. 불탑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참고로 제작하다보니 그 형태가 비슷해졌을 뿐, 오히려 불탑보다는 산길에 간혹 보이는 작은 돌로 쌓은 소원을 비는 돌탑과 유사하다. 독특한 점은 탑 안에 플라스틱이 숨겨져 있다는 것. 이 플라스틱은 실제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전시 작품으로서는 탑과 함께 분명 존재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외면하고자 하는 많은 위험을 플라스틱으로 표현해 탑 안에 담아냈다. 이는 함께 선보인 자동차 모양의 작품들과도 그 의미를 같이 한다. 작가는 평소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운전 사고로 인한 공포 또한 그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탑 형태의 작품은 이런 두려움, 위험에 대해 고민하는 그만의 생각 또는 바램이 담겨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탑의 외관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주로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 모습들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벽돌집이 보이기도 하며 퀵보드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한쪽에는 작가의 작업실인 듯 작업 기구들도 그려져 있다. 흔한 풍경들이지만 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며 색감 또한 입혀져 있지 않다. 화장토 위에 스케치 된 듯 간결한 선으로만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다양한 색감을 사용해왔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마치 미완성으로 끝낸 듯 작품은 온통 하얗기만 하다.
“이번 전시 전까지 선보여 왔던 제 작품은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또한 치열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어떤 색감을 사용할지 미리 결정하고 완성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이후 결정한 색감을 뽑아내는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메인 작업인 탑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박정근 작가는 이번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완성이라는 목적은 아예 정해두지 않고 작업에 임했다. 조금은 색다르긴 했지만 전시 준비기간 내내 이전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즐겁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부담은 없애고 손이 가면 가는 대로, 가슴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웃으며 작업을 마무리 했다.
작가보다 작품을 주인공으로
박정근 작가는 작업하는 과정을 본인 스스로 중독이라 느낄 정도로 즐기는 편이며 매번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나 독특한 내용의 작업을 진행 할 때 유독 더 많은 흥미를 느낀다. 때문에 본인이 제작한 작품에 상당히 애정이 많은 편이며, 완성 이후에도 작품을 어떻게 소장할 지 고민이 많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완성합니다. 그 작품들 중 일부는 타인에 의해 소장되거나 일정한 공간에 전시되며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되지만, 남은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가 직접 소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훗날 제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이 작품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가 멈춘다는 것이고 그 순간부터 부동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완성되지 않은 작품은 과정상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작가가 원할 때면 언제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박정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멈추어 있길 원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 숨 쉬듯 변화하고 진화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에서 그가 한 일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작품을 주인공으로 정한 것이다.“일반적으로 갤러리에 들어선 관객은 눈으로는 작품을 감상하지만 머리로는 작가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작가는 그 전시의 주인공이 됩니다.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작품을 중심에 두고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여섯 번째 개인전은 이러한 콘셉트로 시작한 첫 번째 전시입니다.”작품을 주인공으로 두고 작업에 임했던 박정근 작가는 이러한 생각으로 전시에 대한 부담을 덜어냈다. 결과물에 집착하는 대신 과정에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오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느낄 수 없는 과정의 즐거움, 그는 이 느낌을 관객과 나누고자 했다. 이전에 전시했던 작품을 다시 변화시켰고 소성되지 않은 작품을 전시에서 선보였다. 메인으로 보여진 탑은 결합하는 방법에 따라 변형이 용이하도록 제작했고, 형태가 돋보이도록 색감은 담아내지 않았다. 외관의 표현 또한 단순하고 자유로운 선을 중심으로 스케치만을 그려냈다. 가능한 많은 부분을 비워두고 밝은 상태의 이미지만을 보여주었다.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기에 많은 것을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이다.
“작품에는 앞으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습니다. 먼 훗날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작품을 변화시켜도 좋고 다른 작품의 일부분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 작품이 계속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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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