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우주의 본질이자 생명의 근원인 흙
문찬석의 한 줌 흙 이야기
글. 안준형 여주시청 주무관, 큐레이터
흙은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와 동식물의 유기물에 물과 공기 등이 섞인 것으로 지구 표면을 광범위하게 덮고 있는 물질이다. 그 때문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흙은 흔하디 흔한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숭앙崇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는 삶의 방식에 따른 인식의 차이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족은 전자에 가깝고, 원시부터 농경 생활을 시작한 우리 민족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흙이란 생명을 잉태해 양식을 내어놓는 은혜로운 존재,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한 필수자재, 음식이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첨단 소재였다. 이처럼 흙은 우리네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기에 태어난 곳이자 되돌아가야 할 숙명적 근원,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좋은 땅과 흙에 대한 희구希求는 이른 시기에 자기를 빚어내는 데 기여했을 것이며, 더 나아가 현재의 부동산 광풍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주에서 20여 년 한결같이 도자기를 빚어온 문찬석 작가의 인식도 앞서 우리 민족의 감정 깊숙이 자리한 흙에 대한 정서와 궤를 같이한다. 작가에게 한 줌 흙이란 각종 생명이 잉태되는 공간이며, 넓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본질이자 근원과도 같다. 그러하기에 자기를 빚고 구워내는 것을 본인이 한 줌 흙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장 가치 있는 행위라 여기며 자신을 스스로 흙장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시간을 만드는 공간’이라는 뜻의 작업실 명칭, ‘도유가陶遊家’를 통해 더욱 확장된다. 귀한 흙으로 빚어낸 작품이 언젠가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할 것이기에 작품을 빚어내는데 생명을 불어넣듯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흙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함께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화두는 오랜 시간 천착한 ‘달’이라는 주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저마다의 형상을 드러내는 달항아리 연작과 함께 달항아리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으로 창작한 벽걸이 작업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연출된 24개의 원형 기器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시간을 상정해 15도씩 옮겨가는 것을 계절적으로 구분한 24절기를 상징하는 것인데 조명과 배치에 따라 달리 드리워지는 그림자에서 달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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