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의 애장품
이번호에는 분야전문가의 주목할 만한 도자애장품들을 모아 소장품과 그에 얽힌 사연과 추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구보다도 소장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간 세심한 감상자가 되었고 은밀한 관찰자가 되었으며 주도적인 소장자가 되었던 이들의 애장품을 또 다른 차원의 도예문화로 소개합니다. 불황과 팬데믹 등 여러 외부적 요인들로침체되고 있는 근래에 ‘나의 애장품’을 통해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이슈가 되길 바랍니다.
김은주 유리공예가 | 박순관 도예가 | 박진영 에디터 | 서민경 기자 | 우병탁 토·아트 디렉터 | 주재윤 수집가 | 최선일 문화재감정위원 | 최윤정 디렉터
진행·정리.이연주·이예은기자 사진.이은 스튜디오
김은주 유리공예가의 애장품
곽경화의 조약돌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유리작업을 하고 있는 김은주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잡지 기자와 단행본 편집자로 일해오다 4년 전부터 취미로 해오던 유리작업을 하는 공예가가 되었습니다. 유리와 유리를 합쳐서 녹이는 퓨징기법을 주로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는데 묘하게도 책의 편집일과 닮은 부분이 있어서 ‘유리편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나의 애장품은 무엇인가요. 곽경화 도예가의 조약돌 시리즈 세 개를 좋아해요. 다른 시기에 구입한 건데 묘하게 삼위일체처럼 한 작품처럼 느껴져요. 하나는 바다를 그리면서 골랐고, 하나는 바다의 포말이나 새의 깃털처럼 느껴져서 골랐고, 하나는 달무리를 생각하면서 골랐어요. 아주 미세하게 손에서 잡히는 느낌이 다르지만 묘하게도 제 손에 꼭 맞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작가님이 마치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자세로 손으로 빚어서 제 손에 도달한 그 시간이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소장품이 애장품이 되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곽경화 작가님의 조약돌 시리즈는 원래 선물로 만들어진 것이고 캡슐 약처럼 보이기도 해서 ‘비타민’이라는 애칭이 있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한 손에 꼭 쥐어지는 조약돌은 만지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어요. 외출하기 전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손에 꼭 쥐고 심호흡을 하는데 정말 무슨 잘 듣는 약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이 되는 돌이에요.
― 애장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갤러리 우물의 <어떤 돌, 스스로 구르는>전시에 작가님이 돌 1000개를 구웠는데, 그러다 보니 비슷한 것들도 있었어요. 나중에 아주 친한 사람들끼리 같은 걸 골랐다는 걸 알고 함께 놀라면서 웃은 적이 많아요. 저희끼리는 그 돌을 비타민이라고 하는데 약도 똑 같은 걸 먹는다면서요. 아마도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마음에 그리는 바도 조금씩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걸 작품을 통해서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 최근에 산 물건이 있다면? 금속작업 하는 이윤정 작가의 ‘못’ 시리즈를 구입했어요. 전시가 있을 때 마다 하나씩 구입하는데 ‘못’을 컬렉션 하는 재미가 너무 커요. 너무 작고 흔한 게 못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생활의 아주 작은 도구라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 내가 생각하는 ‘애장품’이란? 제 생활 속에 잘 스며드는 공예가 좋아요. 갤러리나 미술관이나 정돈된 숍에서 멋져 보이는 것보다 작고 평범한 제 집이나 방에 저의 물건들과 잘 어울리는 것들을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어울림은 익숙한 제 물건들에 기분 좋은 낯설음을 주거나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공예품들이에요. 어쩌면 예술품들보다 공예품이 좋은 것은 아마도 ‘생활’과 더 연결이 많이 되어 있어서일 것 같아요.
박순관 도예가의 애장품
노천소성 토기 솥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도예에 입문한 지 45년 됐고, 전공할 때부터 자기류 보다는 토기와 옹기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느껴서 지금까지도 연구와 수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애장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컬렉터에게 애장품이란 대개 고가이거나 연대가 깊은 물건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선 첫 만남에 큰 감동과 함께 가르침을 주었던 기물입니다. 평소에도 그들과 마주치며 눈길이 갈 때마다 첫 만남 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정진해야겠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작품명 노천소성 토기 솥
•작가명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 인근 람팡(Lampang) 토기마을 장인
•크기 35×35×30(h)cm
•제작년도 1993년
•재료와 기법 인근의 진흙에 샤모트를 섞어 손물레로 성형
•소성과정오륙십 개의 솥을 비스듬히 3단 높이로 쌓은 후에 내부엔 대나무 조각을, 겉에는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등으로 둘러쌓아 밖에서 불을 붙여 밤새 구운 뒤 그 다음날에 꺼낸다.
이 작품과의 만남은 1993년에 아열대 지방에서의 노천소성을 확인하기 위해 태국 치앙마이 도시 아래쪽의 람팡이란 도자기 마을에서였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노천소성을 공부하면서 난제를 풀기 위한 방문이였어요. 1984년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 발굴에 참여하며 빗살무늬 토기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책에서 본대로의 노천소성 방법으로는 파손율이 너무 많기에 그곳에서 해답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그 곳 60세가 넘은 여성 도공은 주로 크고 작은 화분과 솥들을 손물레 하나로 너무도 능숙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책으로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소성방법이기에 귀국해 태국의 두 가지 노천소성 방법을 잡지에 실었어요.
솥은 소매가격으로 6000원에 불과 했지만 그 형태나 특히 자연스럽게 나타난 불꽃 그림은 인위적으로는 절대 그릴 수 없는 추상화로 보였어요. 그 작품을 구입해 품 안에 안고 국제공항에서 서성대니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결국에는 비행기에 안고 타려다 공항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사정사정하여 비행기 안에서 꼬박 여섯 시간을 안고 들어와 지금도 내 곁을 지키는 애장품이 되었지요.
나는 이것을 사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몇 개의 작은 솥을 만들어 밥도 하고, 라면도 끓이고, 커피 로스팅 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고고학이나 도자기 전공 교육에서 가끔 사용하니 모두들 신기해합니다. 모닥불에 두세 시간을 굽는 방법도 새롭거니와 곧바로 가스렌지 올려 음식을 해도 깨지지 않으며 특히 음식 맛이 좋다는 사실에 더욱 감탄하게 됩니다. 비록 원시적이며 값싸고 깨지기 쉽긴 하지만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고 사랑스러운 토기입니다.
박진영 에디터의 애장품
지훈 스타크의 기器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월간도예 객원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손으로 작업하는 다양한 메이커를 소개하는 웹진 다다손손 www.dadasonson.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나의 애장품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 지훈 스타크의 기器입니다. 작가는 건축을 전공하고 회화 작가로 활동하면서 도자기도 만들고 있습니다. 도자기 중에서 말끔한 순백자보다는 순박한 지방 백자에, 물레 작업보다는 작가의 손자국이 남은 핀칭 작업에 눈길이 더 갑니다. 지훈 스타크 작가의 작업은 아이가 아무런 편견 없이 손 가는대로 만든 것 같은 형태와 색감을 지녀 마음에 들어요. 도자를 전공한 작가의 작업에서는 보기 힘든 ‘자유로움’이에요. 같은 것 하나 없이 다 다른 점도 좋습니다. 검은색과 분홍색의 색 조합이나 크레파스로 낙서한 듯한 그림도 과감하구요. 공예트렌드페어에서는 아주 작은 작업을 하나 구입했고, 얼마 전에 노영희의 그릇가게에서 큰 작업을 구입했습니다. 언젠가 작가의 작업실에 가서 작업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소장품이 애장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면요.어떤 도자기는 그릇장에 올려놓고 가끔씩만 꺼내서 조심하며 쓰게 되는데 이 도자기는 책상 위에 그냥 올려놓고 매일 봅니다. 큰 기에는 주로 과자를 담아 먹어요. 일상에서 자주 눈길을 주고 쓰면서 더 정을 붙이고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 애장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만든 작은 도자기 컵이 있는데, (형태와 색감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컵이에요) 어느 날 작가의 작업과 많이 닮아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만든 컵도 손으로 주물러 만들어 모양새가 똑바르지는 않지만 정감 있고, 겉은 검은색으로 안은 핑크색으로 칠했는데, 마치 작가 작업의 한 시리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애장품’이란?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상에서 늘 보면서 사용하는 거지요.
― 최근에 산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에 충북 음성에 있는 우시형 작가의 작업실에 갔다가 구입한 도자기 연적입니다. 장작가마로 무유 번조한 작품으로 두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와 단단한 생김새, 그리고 무엇보다 색감이 아주 신비로워서 마음을 뺏겼어요. 작가가 말한 것처럼 ‘우주’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연적은 딱히 쓸 일이 없지만,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물건입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꽃 한 송이를 꽂아서 그릇장에 올려 놓았습니다.
서민경 월간디자인 기자의 애장품
우경자의 청화백자 접시와 젓가락 받침
― 자기소개를 한다면요.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KCDF에서 7년간 일했고, 이후 런던 킹스턴대학교에서 큐레이팅으로 석사를 졸업한 뒤 월간 『디자인』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나의 애장품은 무엇인가요. 우경자 작가의 청화백자 접시와 젓가락 받침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이천에서 두드림 도예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미감을 추구합니다. 13×8.6cm사이즈의 작은 타원형 백자 접시에는 청화기법으로 석류가 그려져 있습니다. 앙증맞은 석류 모양의 젓가락 받침은 접시와 세트로 잘 어울리며 사이즈는 3.5×2×2cm입니다. 우경자 작가는 다섯 가지 민화 요소인 복숭아, 석류, 수박, 봉황, 잉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만듭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진 소장품 속 석류는 수복壽福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직장 동료로 만나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전민경 님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까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면요. 처음에는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몰라서 장식장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굉장히 작은 사이즈인데다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그릇은 보통 세트로 구비해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스머지 스틱 중 팔로산토라는 향의 신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팔로산토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나무’라는 뜻인데 남미 해안지방에서 자라며 고급 향수의 원료로 사용됩니다. 작게 잘려진 나무 토막을 태울 때 나는 연기는 공기를 정화하고 심신을 안정시킵니다. 이 팔로산토의 향을 내기 위해서는 인센스 스틱처럼 세워서 고정시킨 후 불로 살짝 그을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접시 위에 젓가락 받침을 올려두고 그 위에 비스듬하게 팔로산토를 올려놨더니 그럴듯한 모양이 완성됐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를 종종 할 때가 있는데 집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 우경자 작가의 작품 위에 스머지 스틱을 올려놓고 피우면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시각과 후각이 동시에 충족되는 느낌이지요.
― 애장품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있는데 다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은 접시와 젓가락 받침에 반해 어디서 산거냐고 물어봐서 인사동 KCDF숍 매장과 웹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하다고 가르쳐주느라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스머지 스틱을 올려둔 사진을 포스팅했는데 그때도 문의가 많이 왔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실물이 더 귀엽습니다.
― 내가 생각하는 ‘애장품’의 의미는?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지요. 자주 만지면서 물성에 익숙해지고 또 반짝반짝 닦아주면서 물건과 정이 드는 것 같습니다.
― 최근에 산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젊은 감각의 공예 작가를 좋아합니다. 작년 공예트렌드페어 창작공방관에서 박소희 작가의 향꽂이에 한 눈에 반해 구입했습니다. 백자로 만든 소반 모양의 작품으로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인센스 스틱에서 떨어진 가루가 주변으로 흩어지지 않게 받침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어 기능적으로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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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