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작가
사금파리의 색과 질감으로 재현한 내면의 일면
윤경혜의 도편화
글.홍지수미술비평, 미술학 박사, 홍익대 강사
붓이나 여러 가지 유약시유방식 대신 흙 그리고 산화물을 섞어 흙 본연의 색을 드러내고 자신의 시각언어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윤경혜의 작업은 도자의 색이 단순한 명임이나 색채, 질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랫동안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색채는 회화의 전유물이었다. 조각에 색을 칠하는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공예, 건축 그리고 장식미술의 영역에 걸쳐 있던 도자는 입체임에도 기능과 장식의 목적으로 색을 입힐 수 있었다. 색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도자와 회화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매체가 색을 발색하고 다루는 작가의 기술과 접근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화가는 광물질에 휘발성미디엄을 섞어 파레트 위에 짠 후 자신이 원하는 색과 질감이 나올 때까지 섞어 자신만의 색을 찾는다. 반면, 도예가는 광물질에 물을 섞어 유약화하여 기물에 시유한 이후, 소성을 한다. 도예가는 모든 공정이 완결되고 나서야 비로소 최종의 색과 질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화가와 도예가가 색과 질감을 확인하는 ‘시간차’는 회화와 도자가 각각 예술과 공예라는 영역 분류 안에 속한 다른 태생과 목표를 지닌 매체라는 것 이외에도 창작자의 발상과 작업방식, 재현의 다양한 측면 그리고 색을 쓰고 의미부여하는 방식에 있어 두 매체의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도예가가 태토와 유약을 만드는 기본재료는 장석, 석영, 알루미나 세 가지다. 이 원재료의 색은 미색과 백색의 범주 안에 있다. 색을 만들기 위해선 세 가지 기본 구성에 안료 혹은 산화물을 추가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시유, 소성 하는지에 따라 다른 색채와 질감을 만들 수 있다. 즉각적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도예가는 실험이 필수다. 실험은 자신의 예측과 실제 결과물 사이의 간극을 줄이거나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이다. 연금술사나 과학자처럼 도예가가 화학 실험에 준하는 재료와 공정별 운용, 미세한 비율과 온도를 조절하여 얻은 도자의 색과 질감은 분명 페인트 도료나 회화의 유화, 아크릴 물감과는 다른 흥미로운 색과 질감, 물성, 깊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도예가가 불과 흙의 조합이 만든 예측불가능한 우연의 효과를 선호하고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흙과 불의 조합이 지닌 매력, 흥미로움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구상하고 의도하는 바에 가깝게 도자의 색과 질감, 형태를 만들고 우연을 통제하려는 작가도 많다. 윤경혜는 후자에 가깝다.
윤경혜는 작업공정상, 되도록 변수를 줄이려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붓 시유나 담금법 대신 종이(fiber)를 푼 백토물에 다양한 색채의 안료의 비율을 섞어 자신만의 혼색混色을 만든다.1 같은 이유로 전기 가마와 가스 가마를 선호한다. 필요에 따라 투명유를 추가 시유하여 표면의 광택, 채도, 질감의 정도를 조절한다. 작가는 대학원 재학 내내 태토와 안료의 조합과 성분비를 달리하는 실험을 거듭해 자신만의 색 모음을 만들었다. 수년간 실험으로 축적한 작가의 도편 파레트의 구성은 다채롭고 체계적이다. 수집한 데이터에 따라 필요한 형태와 길이, 명도와 채도 별로 도편陶片을 다수 제작한다. 작품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색도편을 골라 캔버스 위에 미리 그려둔 드로잉에 따라 접착제를 이용해 하나씩 붙이며 모종의 색면을 구성한다. 작가가 붓 대신 핀셋을 들고 작은 도편을 일일이 집어 평면에 붙이고 채우는 모습은 흡사 화가가 캔버스 평면 위에 물감 머금은 붓획劃을 겹쳐 올려 층위를 만드는 것을 연상시킨다.
윤경혜의 작업은 고온소성이 끝난 사금파리를 재료로 사용하기에 도예작업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효과, 일루전이 적다. 그러나 이 작업에도 우연성과 즉흥성은 존재한다. 작은 크기라 변화가 크지 않지만, 각각의 모양과 색채가 조금씩 다르다. 안료의 혼합과 불의 노출 정도에 따라 명도와 채도도 제각각, 휘고 뒤틀리기도 다른 것들이 모여 화면에 묘한 운율과 운동감그리고 빛의 난반사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무작위로 조각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앞서 붙인 조각과 어울릴 적당한 것을 선별하기도 한다. 화면의 구성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 색면이라는 큰 계획 아래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수시로 바뀌는 작가의 감정이나 직관에 따른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 그리고 재료나 화면의 상태를 조율하는 의식의 힘이 수시로 교차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으로 진척된다.
자신만의 색채, 질감을 수집하고 선별하여 반 부조의 화면을 만들고 도자의 색과 질감을 자신의 언어로 사용하는 윤경혜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특별한 기법이나 접근이 아님에 있다. 그녀는 흔한 재료와 방법으로 도예가들이 오랫동안 형태에 비해 간과해왔던 색의 개념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도자예술에서 형태와 색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도예가들은 유형의 물질로 유형의 형태를 세우는 데 집중한 나머지, 도자의 색을 우리의 연구 중심에 오랫동안 두지 못했다. 물론 도자의 색이 다른 매체의 것에 비해 고유하거나 특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단순히 입체물에 색을 입히는 것, 기능상 유리막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도자의 색은 단순한 병치나 육합으로 진동하는 일련의 색조가 아니다. 이를테면, 도자의 색은 빛이 표면에 부딪히고 미끄러져 내리고 형태의 고저를 분명하게 만드는 동안 오브제 밀도, 운동성과 함께 한데 얽혀 인지되는 복잡한 경험이다. 즉, 도자의 색은 표면의 구조와 상태에 따라 굴절과 반사를 거듭한 빛이 어떤 명도와 색조를 만들고 이것이 한데 뭉쳐져 우리에게 색과 질감으로 인지되는 독특한 구조로 인식된다. 붓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약시유 방식 대신 흙과 산화물을 섞어 재료 본연의 색을 드러내고 자신의 시각언어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윤경혜의 작업은 도자의 색이 단순한 명임이나 색채, 질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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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