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하거나 또는 친숙한 언어적 접근을 통한 시간에 대한 탐구
김지혜 <시간과 시간이 마주치는 곳에서>
글.장민아 갤러리밈 큐레이터 사진. 편집부
2020.9.2~ 9.20 갤러리밈
서울 종로구 인사동 5길 3
T. 02.733.8877 H. www.gallerymeme.com
묵직한 크기의 조형물들이 공간 속에 흩어져 있다. 무심한 듯 보이는 형태는 그러나 다가가보면 촉각적 움직임으로 표면이 일렁인다. 그것들을 받치고 있는 각기 다른 색깔의 아크릴판도 정교하게 계산된 의도가 엿보인다. 친근한 연필 드로잉, 암호같이 느껴지는 낯선 문자 등 다양한 매체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우러져 들려주는 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과 시간이 마 주치는 곳에서>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 김지혜 작가 (이화여대 부교수)는 복합매체를 적극 활용하며 다양한 층위의 시간에 대한 내러티브를 펼쳐냈다.
타 매체에 대한 실험적 시도와 사유의 과정이 흥미롭게 드러나는 작품은 「시간의 비밀」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의미를 담은 히브리어 텍스트가 쓰여진 세 개의 판넬과 찰 흙놀이하듯 만든 작은 점토덩이들. 작가는 극단적으로 낯선 고대의 언어를 채택함으로 관람자의 언어적 접근을 차단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해독이 불가능한 텍스트 바로 앞에 놓아둔 점토 덩어리로 언어적 접근 이전의 근원적 소통의 몸짓을 제시한다. 언어는 감정이나 현상들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되 원형과의 간극은 숙명적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이라는 개념도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계열로 구성된 각기 다른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침투하고 녹아들어가는 연속적인 흐름이자 만남이다. 이 작품 속에서 시간과 언어의 불확실성은 흙이라는 즉물 성과 대비되며 마주보고 있다.
김지혜 작가는 남성중심적 관점 위에 세워진 여성성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을 예술계 안에서 비주류·타자화 되어온 도자 매체와 연결시켜 작업해왔다.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드러내는 것에서 벗어나 유기체적 형상으로 복수성Multiplicit é 과 다름이 강조된 여성적 공간을 제시하고, 이를 절대자 혹은 타자와의 만남을 매개하는 경계지점으로서의 의미로 확장시켜왔다. 도자라는 매체의 특성도 분명 있지만, 작가의 작품세계는 시각 기반이 아닌 촉각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다.
이와 같은 촉각적 접근방식은 작가가 사용한 유점토를 통해서 더욱 강화된다. 유점토는 건조되지 않고 지속적인 변형이 가능한 재료로서 작업과정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또한 그 과정을 공유하고자하는 의도도 포함된다. 단순한 형태로 빚어진 점토 모양은 누구나 해보았을 법한 흙을 밀고, 굴리고, 쥐어보는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자 각자의 근원적이면서 촉각적인 기억은 작가의 작업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이로써 작품을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무수한 반복의 행위가 쌓인 치열하고 지난한 수행적 과정이자 생생한 시간의 기록물로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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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