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4회 개인전 2002. 6. 21~ 6. 26 현대아트갤러리 무역센터점
한발 다가감
글/김영민 한전갤러리 큐레이터
1. 모든 사람이 미술을 취미로 즐기고, 나름대로의 미의식을 가지고 월급을 조금씩 모아 미술작품을 한두 점씩 사서 집에 걸고, 결혼선물로 판화나 예쁜 아트 포스터나 다기(茶器)나 접시를 선물하는 세상이 되면 여러모로 행복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가끔- 공상처럼 할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화가나 조각가 그리고 공예가들이 만들어 내는 예술작품들이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일년 내내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한두 점 살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공상처럼 할 때가 있다. 위의 두 가지는 어떤 방식으로도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사람들 중에는 시각적인 자극을 몹시 싫어하거나 무감각한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설사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일정하게 정량화하여 환금(換金)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어려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가 불가능한 것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미술작품을 만드는 일이 취미의 다양성에 비추어 보아 만만치 않음은 물론, 미술의 사회에 대한 앞서가는 관행(前衛)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취미에 다가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미술을 좋아할 수 없으며 미술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미술의 소통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전제는 시각적 자극을 좋아하거나 좋아할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미술을 취미로 하고 그것에 접근하게 되면 자연히 하나의 공인된 사회현상으로, 제도로, 주요요인으로 미술계가 공인받고, 쌍방 소통의 민주적인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대중추수적인 미술행위들은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근자에 와서 많은 작가들이 조금 더 소통에 대해서 고민하고 조금 더 소통이 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흐름은 미술이 가지고 있는 기호로서의 의미를 복원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2. 김윤수의 이번 전시는, 예전의 것보다 좀 더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된 듯 하다. 구조들의 질서와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주는 미적인 관점을 주로 다루었던 지난 작업들에 비해서, 이번 작업은 되도록이면 물체가 가지는 변형된 성질들을 예술작품 수용자에게 어떻게 ‘의미’로 전달하는가 하는 것을 고심한 듯 보인다. 여전히 도자재료의 물성과 그것의 변화들이 기저를 이루고 있지만, 좀더 부드러워 지고 계획 이상의 것들이 작품 제작과정에서 스며들어 형태를 유연하게 하고, 그 유연성이 정서적인 숨결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배려로 나타나게 되고, 작품 자체는 연성화(軟性化)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작품의 형태들에서(우선) 보여지는데, 이전의 것들보다 탄력적이고 자유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작가는, 공정을 추측케 할만한 징후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은 작품의 측면들을 통해서 흙의 질감을 살리고, 전후면의 다른 구성부분들의 변형된 질감에 대비,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택한 연질의 흙과 경질의 돌과의 대비는 예전의 경우 변형된 질감인 경질의 돌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면, 이번의 경우 는 연질의 흙의 속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이되어있다. 김윤수가 재질감에서 흙의 부드러움을 주요요소로 채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 즉 경질의 돌 위에 부조로 소조된 소년들을 보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유연성은(한번은)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대비를 통해서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또 한번은) 그 강조된 부드러움으로 그가 나타내려고 하는 ‘인간의 따듯한 숨결’을 보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려는 바는 인간의 ‘숨결’이며, 이 ‘숨결’이라는 정서적인 주제는 딱딱함 속에 배태되어 있거나 그것을 극복함으로 인해서 보여지는 것이다. 실재로 작가가 채용한 부조의 방식은 조각가가 돌로 무엇을 만드는 것처럼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혹은 돌 속에서 생명이나 숨결로 상징되는 형태들이 배어나오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코드를 ´그것다움´에서 축복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서술(narration)을 통해서 담화(narrative)상황을 조성하려 한다.